가끔 <콘서트 7080>을 볼 때면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솔잎처럼 새파랗던 가수들이 먼 세월을 건너와 노래하는 모습은 반갑기보다 애처롭다. 아 무상하구나. 저들에게 한때 가장 싱그럽고 아름다운 날들이 있었다. 이젠 돌아가지 못하겠구나. 내가 저들을 보는 시선이 그럴진대 나도 젊은 사람들이 보기엔 그럴 것이다. 동시대의 희망과 고뇌를 공유하며 이만큼 걸어온 얼굴들이다.
그때 그리 특별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보통의 연인이 있었다.
두 사람은 열렬히 사랑했고 장래도 약속했지만 의대생인 남자의 부모는 천한 딴따라 아가씨를 받아주지 않았다. 부모의 뜻을 거역하지 못한 남자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다. 남겨진 여자는 텅 빈 가슴으로 오랜 세월을 살았다.
이 아가씨가 가수 윤연선이다. 크게 스타로 부각되진 않았지만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노래들로 대중들의 마음을 정화시켰다. 때 묻지 않은 깨끗한 목소리 정갈한 가사들이 참으로 매력적인 가수였다.
2000년대 초반 과거 포크 가수들이 의기투합해 공연을 하게 되었다. 이 소식을 전하던 신문기사에 윤연선이 여전히 독신으로 살고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한 민성삼의 딸이 이 기사를 보고는 아버지한테 이야기를 건네고 적극적으로 만나라고 독려를 해댔다. 민성삼은 부모의 강권으로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으나 이혼하였다. 슬하에 세 자녀가 있었다. 자녀들은 과거 아버지의 연인이 <얼굴>을 부른 가수 윤연선이라는 것을 아버지로부터 들어 알고 있던 터였다.
당시 윤연선은 <얼굴>이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민성삼의 딸이 이런저런 수소문으로 알아내 그곳을 찾아가게 했다.
딸의 주선으로 소소한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재회하게 되었고 30년 전의 감정이 다시 살아나 다시 청혼하게 되었다고 한다.
감정이 다시 살아난 게 아니고 오랜 시간 간직되고 있었다고 하는 게 옳겠다.
두 사람은 뒤늦은 결혼을 했다. 아마 30년 전 청춘시절보다도 더 열렬하고 애틋한 사랑을 나누고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인연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먼 길을 돌아서 그 시간의 간격 차가 있을 뿐 만날 사람은 언제고 만난다는 인연설이 참으로 아름답다.
사랑을 잃고 그 상처를 부여안고, 그래도 원망하지 않고 하 많은 세월을 살아온 사람. 그녀가 부른 <얼굴>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 노래 얼굴은 대중가요가 아니라 가곡이다. 윤연선은 이 가곡을 정말 아름답게 불러 가장 빛나는 대중가요로 만들었다.
한 시대를 장식했던 얼굴들은 이제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그렇지만 나이를 먹었다고 감성과 열정이 사라지겠는가. 여전히 우리는 사랑을 갈망하고 때로는 상처를 받고 눈물도 흘린다. 오히려 나이든 저들의 가슴이 더 여리고 예민하지 않을까.
심봉석 시 신귀복 작곡 윤연선 노래 :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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