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음악 이야기

희망가

설리숲 2014. 7. 27. 00:34

 

 도쿄 동쪽의 가나가와 현에 시치리가하마라는 작은 해변마을이 있다.

 이곳은 유명한 관광지로 후지산을 관망할 수 있으며 도쿄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한다.

 이 마을 바닷가에서 1km 근거리에 에노시마라는 섬이 하나 있다. 지금은 다리가 연결되어 있지만 다리가 없던 옛날 이곳에서 큰 참변이 있었다.

 

 1910년의 이야기다.

 그 해는 우리 역사의 씻을 수 없는 망국의 치욕이 있었지만 이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일본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그해 1월 23일 이 마을의 개성중학교 여학생 열한 명과 소학생 어린이 한 명이 조각배를 타고 에노시마 섬으로 놀러갔다가 풍랑으로 열두 명 전원이 익사했다.

 

 그 충격과 슬픔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겠다. 당시라면 원수 같은 적국이지만 사람의 생명과 죽음에 대해서는 아프지 않은가.

 그 학교 수학선생이었던 미스미 미쯔꼬는 당시 일본에서 불리던 노래에 아이들을 애도하는 가사를 만들어 붙였다. <후지산의 하얀 봉우리 (真白き富士の根)>라고도 하고 다른 제목으로는 <시치가라하마의 애가 (七里ヶ浜の哀歌)>라는 노래였다.

 

 

   하얀 눈 후지산, 녹색의 에노시마 섬

   바라다보니 눈물 가득하다.

   돌아오지 못한 열두 명의 씩씩한 영혼

   이 마음과 영혼을 바치노라.

 

   깊은 바다에 보트는 가라앉고

   바람과 파도, 작은 팔로 저어도

   힘은 지쳐, 부르는 이름, 엄마 아빠

   원망 깊은, 시치리가 해변

 

   쌓인 눈도 흐느껴 울고 바람소리 요란한데

   달도 별도 모습을 감추었다.

   너희 귀한 영혼은 어디를 헤매느냐

   빨리 돌아오너라 엄마 가슴에.

 

 이 노래는 원래 미국의 찬송가였다. 예레미아 잉걸스(Jeremiah Ingalls)가 작곡했다고 하며 <Divine Love>인데 제목은 여러 가지라고 한다.

 일본에서 널리 불리던 이 노래는 해협 건너 조선에도 들어와 크게 히트를 쳤다. 우리나라 최초로 음반에 취입하여 발표한 노래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에서의 곡목도 탕자지탄가(蕩子自嘆歌), 희망가(希望歌) 등 여러 개였는데 작자미상인 그 가사내용을 도출해내어 식민지의 암울한 상황에 맞춰 ‘희망가’라고 널리 알려져 지금까지 내려온 것 같다.

 

 과거에도 적국이었으며 여전히 앙금이 남아 불편하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풀어지지 않을 나라, 그 일본의 노래를 포스팅하는 건,

 세월호 비극 100일 즈음에 문득 100여 년 전의 그 사고가 생각나서다. 스쳐지나가듯 들었던 그 이야기가 별로 귀에 닿지 않았는데 우리의 참사를 맞고 보니 그때 일본의 바닷가에서도 참으로 고통스러웠을 것이라 짐작하겠다.

 

 

 

 

 

                   작자미상 안치환 노래 : 희망가

           

 

 

                    일본 가수 노래 : 시치가라하마의 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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