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 영원히 같이 걸을 수 있는 길이란 없다. 혼자 걸어야 하는 길, 미아처럼 울면서 혼자서 찾아다니는 길, 그것이 바로 고독한 인간의 자아일지도 모른다.
70~80년대를 넘어오면서 우리 문학계, 특히 소설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은 양대산맥이 있었다. 최인호와 황석영. 그러나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두 사람의 성향은 전혀 달랐다. 최인호는 중산층 부류 여유로운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과 문제를 유려한 문체로 낭만적으로 썼고, 황석영은 그 반대, 어두운 뒷골목이라든가 사회적 하층민들의 실태와 현상을 적나라하게 대변했다. 따라서 본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최는 가진 자들의 세계, 황은 그렇지 않은 자들의 세계로 분류되기도 한다. 황은 여전히 진보좌파로 매도되고 있고 아닌게 아니라 그의 일련의 움직임들이 그런 인식을 심어주고 있기도 하다.
‘길’이란 낱말이 주는 뉘앙스가 나는 좋다. 정착으로부터의 자유, 고독, 또는 고난과 역경, 모험, 새로운 세상을 향한 설렘 등……
나는 이제껏 길을 동경해 왔다. 여행은 단순히 집을 떠난 물리적인 이동이 아니라 새로운 사고와 넓은 눈을 가지게 되는 진지한 혁명이다.
황석영은 <삼포 가는 길>을 하룻밤에 완성했다고 한다. 오랜 나날을 뼈를 깎듯 조탁하여 탈고한 작품이라야 걸작은 아니다. 나는 황순원의 <소나기>가 우리 문학의 백미라고 나름의 가치를 매긴다. 그리고 그 다음이 <삼포 가는 길>이다.
황석영이 이 걸작을 쓸 때는 도시화 산업화가 절정으로 가는 그 어름이었다. 고도의 성장 뒤편에선 하층민들의 고단한 삶과 더불어 인간성의 피폐가 더불어 진행되었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그 시대상을 고발한 결정체로서 지금까지도 최고 문제작으로 회자되고 있는 소설이다.
추억을 잃고 낭만을 잃고 돌아갈 고향을 잃어버린 그들은 갈 데를 몰라 길 위에서 방황한다. 그렇지 않은가. 당시 대중가요도 고향이나 귀향을 희망하는 노래들이 봇물처럼 나왔다. 메마른 도시생활의 염증이다.
황석영 고유의 성향대로 출소자 날품팔이 노동자, 술집작부 등이 ‘길’에서 만나 서로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며 동행한다. 그러나 푸근한 고향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개발하고 깎고 다듬어 더 이상의 고향이 아닌 이방이 되어 버렸다. 갈곳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아픔을 그렸다.
삼포는 가상의 지명이다. 곽재구의 사평역이나 김승옥의 무진이 그렇듯이.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TV문학관>이 방영되었다. 수많은 <TV문학관>중에서 나는 이 <삼포 가는 길>을 가장 빼어난 작품으로 꼽는다. 수려한 영상미의 연출력과 문오장 안병경 차화연의 뛰어난 연기력이 어울려 가장 멋진 드라마를 만들었다.
이 드라마에 테마곡으로 쓰인 것이 김영동 작곡의 <삼포 가는 길>이다. 이것 역시 뛰어난 작품으로 드라마에 가장 잘 부합되는 음악이다.
작품 속의 삼포는 실제 존재하는 곳은 아니다.
삼포라는 지명이 몇 개 있는데 발 빠르게 진해에서 자신들의 프랜차이즈로 만들어 버렸다. 진해 남쪽바닷가 명동의 한 마을이다.
이곳에 [삼포로 가는 길 노래비]가 있다. 물론 소설 속의 그 삼포를 연두에 둔 건 아니고 강은철이 불렀던 노래와 연관이 있다. 배따라기로 유명한 이혜민이 여행 중에 우연히 본 포구 마을의 풍광과 따뜻함을 기억하여 만든 노래라 한다. 그곳이 삼포마을이다.
전략...
“그런 어릴 적 강한 동경의 향수 때문인지 내가 우연히 여행길에 찾은 어촌마을 삼포는 나에게 동경의 그리움을 충족하기에 충분한 마을이었던 것이다. 비탈진 산길을 돌아 한참을 가노라면...” 후략 - 이혜민의 수필 <내 마음의 고향 삼포>중에서
이혜민에게 강한 모티프를 줄만큼 아름답다던 삼포. 그러나 내가 실제로 가본 삼포는 그리 마음을 끌어당기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혜민이 좀 과장되게 표현을 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이미 여러 해가 흘러 당시의 소박한 아름다움이 다 불식됐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의 삼포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각박함이 있다. 명성만 듣고 찾아간다면 대부분은 실망할 것이다.
다만 길... 마음의 고향을 찾아 가는 길위의 서정을 만들어 걷는다면 나름대로의 여행이 되지 않겠는가.
이혜민 작사 작곡 강은철 노래 : 삼포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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