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하게도 8년 전에도 나는 카루소를 모르고 있었다. 그 전에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노래가 히트해서 그 단어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먹는 것 이름인지 당최 관심조차 없었다.
청평에서 포천 쪽으로 가다 보면 아주 한적하게 외돌아 앉은 곳에 하얀 건물이 있는데 <카루소>라는 이름의 카페였다. 토요일 오후 오후에 드라이브를 하다 우연히 들러 커피를 마신 적이 딱 한번 있는데 이후로는 한번도 그곳을 가보지 않았고 그 카페가 여전히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10년 전 김유정문학촌에서 백일장에 참가했다가 같이 동행했던 그녀와 가평으로 드라이브를 하는 중에 문득 그 몇 해 전의 카페 <카루소>가 생각나서 물어 보았다. 카루소가 무슨 뜻이냐고. 그녀는 나보다 학벌도 월등하고 늘 인텔리겐치아의 이미지로 사는 사람이었기에 진심으로 물어본 것인데 카루소는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모른다고 하지는 않고 잠시 생각하더니 설명하려면 좀 기니까 다음에 말해주겠다고 한다. 그래서 카루소가 무슨 심오한 철학적 사상 같은 것으로 여겼더니 젠장! 가수 이름이라는 걸 두 해나 지나고 나서 알았다. 늘 이미지만 먹고 사는 그녀는 그러니까 그 순간부터 내게는 머리 빈 공주 이상은 아니었다.
엔리코 카루소 (Enrico Caruso).
가장 위대한 성악가로 추앙받는 가수다. 1세기 전의 사람이라 그의 음악을 접하기는 애호가 아니면 쉽지 않다. 나 역시 그냥 막연히 전설적인 인물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미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다르다. 객관적으로 이게 예쁘다 저게 예쁘다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유사 이래 최고의 미인이라는 양귀비도 실은 좀 뚱뚱했다 한다. 지금의 시선으로는 미인은 아닌 것이다. 또 현재 회자되고 있는 최고의 미녀들도 몇 백 년 후 사람들의 시선으로는 그저 그럴 것이다.
카루소도 그렇다. 최고의 가수로 추앙받지만 지금 그의 노래를 들어보면 그저 그렇다. 물론 주관적이다. 더구나 그의 노래를 직접 들을 수는 없으니 그때 제작한 음반으로 듣는 것이라 제작의 기술적인 수준차이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현재 활동하고 있는 성악가들이 훨씬 노래를 잘 하며 그를 추앙하는 노래를 부른 파바로티는 그보다 훨씬 뛰어난 가수다. 기술이 세월 따라 조금씩 발전되고 세련돼지듯이 노래 실력과 기술도 점점 탁월해지고 좋아지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나는 다만 시대적인 미의 기준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다.
나는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가장 위대한 가수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엔리코 카루소는 성악의 변혁과 함께 지금 같은 음악의 모델을 완성한 사람이고 그의 명성과 생애는 누구도 넘어설 수 없는 그야말로 전설이다. 세상의 대부분의 음악가들이 그를 추앙하고 롤모델로 삼는 것으로 보아 분명 그는 위대한 사람임을 미루어 짐작하겠다. 나 같은 무지렁이가 감히 평가할 위인은 아닌 것이다.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 아리아 '남 몰래 흘리는 눈물'로부터 명성을 쌓기 시작한 카루소의 마지막 무대도 사랑의 묘약이었다. 늑막염으로 고생하던 그는 미국 메트로폴리탄 공연 중 무대 위에 질펀하게 피를 쏟으면서도 노래를 불러 그를 살리기 위해 관객이 중간에 공연장을 다 빠져나갔다고 한다.
이 미완성의 공연을 끝으로 요양하다가 이듬해(1921년) 세상을 떠났다. 그를 애도하는 의미로 메트로폴리탄은 이후 10년간 <사랑의 묘약>을 공연하지 않았다고 한다.
도니제티 오페라 <사랑의 묘약>중 남 몰래 흘리는 눈물 : 엔리코 카루소
100년 전에 이런 레코딩을 할 수 있는 서양의 기술이 참 대단하다. '결국은 인문학'이라는 내 지론에 회의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런 기술이 발달함으로써 인문학도 발달하는 것이다. 인쇄술이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지식인 또는 학자연하고 거들먹거릴 것인가. 또 인터넷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