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전농동이라는 동명(洞名)이 있어도 사람들은 내내 청량리라 한다. ‘청량리’라는 이름에는 과거와 추억과 설렘과 애잔함 등의 정서와 감정이 들어있다.
반봇짐 싸들고 무작정 내뺀 소년 소녀가 처음 만나는 서울이 청량리였다. 또한 회색 콘크리트 숲에 지친 청년들이 도망치기 위해 간 곳도 청량리였다.
淸凉里
이름처럼 청량하지 못한 부정적인 이미지도 늘 공존하고 있는 곳. 그 이름을 말하거나 떠올릴 때면 늘 따라다니는 오팔팔.
오늘도 그 골목에선 병든 꽃들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 아니 어쩌면 증오하는 사람들을 기다리며 바스락 말라 가고 있다.
옛날 청량리역에 내려 광장으로 나가면 벅차게 다가오는 거대도시의 설렘이 있었다. 그때 그 광장은 얼마나 넓고 매력적이었는지 모른다. 그곳은 약속하고 만나기도 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시계탑 앞에서 만나자꾸나.
시계탑 아래 서서 행여 그가 못 보고 지나쳐 버릴까 불안해 한여름 뜨거운 뙤약볕이 정수리를 태울 듯 내려쬐어도 꼼짝 않고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손목에 찬 시계가 없어도 올려다보면 커다란 바늘시계가 돌고 있어 마음이 안정되곤 했다. 그럴 때 숱하게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는 것도 제법 재미가 있었다. 서울, 저 사람들이 특별시 사람들이구나.
광장엔 늘 도시 비둘기들이 떼지어 몰려다녔다. 손에 잡힐듯 사람이 가까이 지나가도 도무지 도망칠 기미가 없는 그 새들 또한 얼마나 신기했는지. 서울사람들은 손만 내밀면 잡을 수 있는 저 새들을 왜 그냥 내버려두는 걸까. 시골에서는 새만 봤다 하면 잡아야 직성이 풀리는데.
그 넓어 보였던 광장이 이제는 비좁아 보인다. 비좁아 보이는 게 아니라 짜장 좁아졌다. 일대를 다 롯데가 차지하고 있다. 추억의 광장도 거지 반 이상을 롯데가 뺏어 갔다. 좁아진 광장이 애처롭다. 자본을 휘어잡은 손은 나와 내 또래, 그리고 내 형과 누나들의 어느 한때를 앗아 버렸다. 어디 청량리 광장만 그러할까.
깊은 겨울이다. 뿌연 미세먼지를 씻어내며 연이틀 보슬비가 내려 청량리를 흠뻑 적시고 있었다. 날은 그리 춥지 않았다.
최성호 작사 작곡 명혜원 노래 : 청량리 블루스
내 빈방을 채워줘요 블루스를 들려줘요
호사한 밤 아직 먼데 이쁜 꽃불 어디에 켤까
내 빈방을 채워줘요 블루스를 들려줘요
타는 황혼 타는 국화 늘어진 커텐 황혼이 젖어 화병 속에 시든 국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