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화개 장터

설리숲 2013. 11. 20. 23:10

 

 화개장터의 냇물은 길과 함께 흘러서 세 갈래로 나 있었다. 한 줄기는 전라도 땅 구례(求禮)에서 오고, 한 줄기는 경상도 쪽 화개협(花開峽)에서 흘러내려, 여기서 합쳐서 푸른 산과 검은 고목 그림자를 거꾸로 비치인 채, 호수같이 조용히 돌아, 경상·전라 양도의 경계를 그어 주며, 다시 남으로 남으로 흘러내리는 것이 섬진강(蟾津江) 본류(本流)였다.

 하동(河東), 구례, 쌍계사(雙磎寺)의 세 갈래 길목이라 오고가는 나그네로 하여, 화개장터엔 장날이 아니라도 언제나 흥성거리는 날이 많았다. 지리산(智異山) 들어가는 길이 고래로 허다하지만, 쌍계사 세이암(洗耳岩)의 화개협 시오 리를 끼고 앉은 화개장터의 이름이 높았다. 경상·전라 양도 접경이 한두 군데일 리 없지만 또한 이 화개장터를 두고 일렀다. 장날이면 지리산 화전민(火田民)들의 더덕, 도라지, 두릅, 고사리들이 화갯골에서 내려오고, 전라도 황화 장수들의 실, 바늘, 면경, 가위, 허리끈, 주머니끈, 족집게, 골백분들이 또한 구례길에서 넘어오고, 하동길에서는 섬진강 하류의 해물장수들이 김, 미역, 청각, 명태, 자반, 조기, 자반고등어들을 올려 오곤 하여 산협(山峽) 치고는 꽤 은성한 장이 서는 것이기도 했으나, 그러나 화개장터의 이름은 장으로 하여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이 서지 않는 무싯날일지라도 인근(隣近) 고을 사람들에게 그곳이 그렇게 언제나 그리운 것은, 장터 위에서 화갯골로 뻗쳐 앉은 주막마다 유달리 맑고 시원한 막걸리와 펄펄 살아 뛰는 물고기의 회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주막 앞에 늘어진 능수버들 가지 사이사이로 사철 흘러나오는 그 한(恨) 많고 멋들어진 춘향가 판소리, 육자배기들이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게다가 가끔 전라도 지방에서 꾸며 나오는 남사당, 여사당, 협률(協律) 창극 광대들이 마지막 연습 겸 첫 공연으로 여기서 으레 재주와 신명을 선보이고서야 경상도로 넘어간다는 한갓 관습과 전례(傳例)가 화개장터의 이름을 더욱 높이고 그립게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김동리는 이렇게 단편 <역마>를 시작하며 비교적 길게 화개장터를 묘사했다.

 방방곡곡 삼거리나 사거리 길목에는 늘 인적이 번화하기 마련이라 그런 데선 언제나 이야깃거리가 넉넉하게 생겨난다.

 

 화개장이 유명해진 건 아무래도 대중가요로 인한 덕도 있겠지만 그 이전에도 화개는 오고 가고 드나드는 나그네들이 많았고 인근의 사람들에게도 마음의 고향처럼 인식되어 있는 고장이었다.

 

 

 

 

 어느 해 연분에 나는 거기 공중전화에 매달려 누군가에게 장거리전화를 걸어 봄밤이 몹시도 우울하다고 주절거린 적이 있었다. 그때 올려다본 지리산의 능선은 왜 그리도 아리던지. 아, 그것은 참으로 찬란한 슬픔의 봄이었다.

 

 

 

 

 

 

 

 

 

 헤어진 어떤 여자와 맨 처음 여행을 간 것이 화개였다. 벚꽃이 하얗게 비처럼 날리던 그 길을 걸으며 조금씩 조심스레 다가갔던 설레던 마음이 오래 가슴에 남았다. 아, 그날의 벚꽃은 또 얼마나 찬란하게 아름다웠던가. 꽃이 핀다고 하여 花開라 했던가.

 

 

 

 

            김한길 작사 조영남 작곡 조영남 노래 : 화개장터

   

 





마음이 울적하고 조급해지면 생각나는 그곳 섬진강, 화개.

화개 이야기에 조영남의 노래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토속적이거나 클래시컬한 음악이면 좋겠는데 그래도 어차피 그 노래 때문에 화개를 여행했고 그것에 대한 포스팅이니 어쩔 수 없다.

 

 



 

 

 

 화개는 차의 본고장이다.

 차의 시배지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차를 만들고 있다. 삼거리에서 쌍계사로 올라가는 화개천변으로 내내 차밭이 펼쳐져 있다.

 

 화개를 여행하려거든 꼭 봄에, 벚꽃 흐드러진 때부터 햇차가 고동으로 나오는 5월 중순까지 다녀오시라. 거기 벚나무 그늘 아래서 외로움에 한숨 슬퍼해도 남부끄럽지 않을 테고, 슬퍼하고 나서 마시는 차 한 잔에 인생 시름 덜어도 좋으리. 아, 온몸으로 퍼지는 그 향기를 어찌 설명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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