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은 겨울이 길어 고요한 밤 뒷산에서 툭툭 알밤 떨어져 구르는 소리가 귀 곁인 양 명징하게 들리는 무렵부터 이듬해 감자 심을 때까지 건넌방 가마솥은 날마다 부글대며 끓었다.
평소엔 저녁으로 쇠죽을 끓였다. 아버지와 형이 작두로 썬 옥수숫대와 잇짚을 솥에 넣어 물을 붓고 군불을 때는 것은 아버지 일이었다. 그래서 날이 추워도 건넌방 아랫목은 늘 따끈따끈했다. 물이 끓으며 여물이 삶아지면서 하얗게 퍼지는 김과 그 특유의 냄새는 바로 어제인 듯 생생하게 상기된다. 그 김만 보아도 저절로 몸이 따듯해지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을 때, 가령 집안에 행사가 있어 많은 음식이 필요하다거나, 또는 두부를 만들 때도 가마솥을 끓였다. 메주를 쑤었고, 가으내 주워온 도토리를 걸러 묵을 쑤었다. 그럴 때면 많은 장작을 땠기 때문에 방 아랫목이 뜨겁다 못해 시커멓게 타곤 했다.
세밑엔 이틀을 걸려 장작불을 지폈다. 길금으로 엿을 고았기 때문이다. 젓고 또 젓고. 엿은 바쁜 와중에도 엄마가 들락거리며 젓고 또 저었다. 아이는 해마다 그 정경이 설렜다.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도 엿과 조청을 좋아했다. 며칠을 앞두고 아버지가 내 키보다 훨신 높도록 장작을 패 쌓아놓고 엄마가 짚을 뚤뚤 뭉쳐 사뭇 가마솥을 닦아낼 때부터 벌써 설레곤 했다.
펄펄 눈이 내렸다. 아이는 마당과 사립문 밖을 어정거리며 엿이 되기만을 학수고대하지만 엿은 너무도 더디게 졸았다. 문 밖 수숫단을 세운 빈밭에도 눈이 내렸고 개울 건너 여름이면 아버지가 쟁기를 갈면서 목 터져라 소를 부리던 손바닥만 한 논두렁에도 눈이 내렸다. 눈이 와 아이들보다 더 신나서 뛰어다니는 누렁이를 데리고 학교 가는 길목의 소에도 나갔다. 여름이면 커다란 너럭바위에 서서 민낚시를 하던 소다. 워낙 깊어 거무튀튀한 물을 내려다보면 아찔하여 당장 물속으로 거꾸러질 것 같아 오줌을 지리기도 하는 곳이다. 겨울인데도 물은 마르지 않아 하얗게 덮인 얼음장 밑으로 웅숭깊은 물이 흐르는 게 보였다.
게서도 꽤 많이 기다린 것 같은데도 설레는 기분으로 돌아와 보면 엿은 아직도 안 되었다. 엄마 아직 안돼? 조급하여 엄마에게 자꾸 물어보면 기다란 주걱에서 주루룩 흐르는 엿물을 가늠해보던 엄마는 그 대답은 않고 뒤채이지 말고 나가놀라 지청구였다.
날이 저물고 밤이 이슥해도 엄마는 부지런히 들락거리며 엿을 저었다. 아이는 이제 지쳐 안방에서 잠이 들고 잠든 아이를 안아다가 엄마는 절절 끓는 건넌방에다 뉘었다. 하루 종일 불을 땐 방 아랫목은 꺼멓게 타들어가고 아이는 너무 뜨거워 밤새 뒤척이며 깼다가는 다시 개잠을 들곤 했다.
엄마와 아버지는 밤새 잠을 안 자고 엿을 고았다. 이튿날 아침에야 아궁이의 불도 사그라지고 피곤한 아버지는 건넌방 윗목에 누워 드르렁 코를 곯았다. 이제 비로소 아이들은 엊그제 빼 온 흰 가래떡에 달콤한 조청을 찍어 먹었다. 아 그 기막힌 조청이라니. 떡은 조금씩만 베어 먹고 대고 조청만 함씬 찍어 댔다. 가난한 산골의 아이들도 조청과 엿이 있는 세밑엔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은 행복한 아이들이 된다.
엿은 겨우내 어른과 아이의 가장 요긴한 군것질거리였고 엿과 함께 긴 겨울이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