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하여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밤 바람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신경림 <가난한 사랑 노래>
KBS 고민정 아나운서의 사랑과 결혼 이야기는 늘 훈훈하게 회자된다. 작금 풍속도를 보자면 방송국 아나운서가 되려는 목적이 상류층 로열패밀리의 일원으로 진입하고자 하는 이른바 ‘스펙쌓기’의 한 수단이 아닌가 할 정도로 여자 아나운서들의 행태가 곱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별로 특이할 것도 없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혼이 오히려 특별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시인이다. 시인이라고 해서 꼭 가난한 것도 아닐진대 그리 아름답고 순수하게 볼 것까지야 없지만 그래도 오로지 아름다운 사랑 하나로 한 남자를 안은 그녀의 이야기는 가끔 미소를 짓게 한다.
겨울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고독과 슬픔의 계절이다. 언 손을 호호 불며 성냥을 팔아야 하는 동화 속의 소녀. 전기가 끊겨 촛불을 쓰다가 불이 나서 변을 당한 우리 이웃들. 달동네 가난했던 우리들. 연탄가스로 질식사하곤 했던 그때 그 사람들.
파리의 다락방. 겨울.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살던 그 다락방의 슬프고 추운 이야기가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이다. 난로에 땔감이 없어 인고의 결과물인 원고지를 태워야 할 정도로 가난한 그들이었기에 사랑도 아프고 슬프다.
폐병이 심해 병약해져만 가는 연인 미미에게 가난한 시인 로돌프는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다. 각박하고 살벌한 세상을 견뎌내는 것조차 힘겨웠다. 그리고 애인을 떠나보냈다. 가난하다고 사랑을 모르겠는가.
그들에게도 사랑이야 따뜻하겠만 가난한 사랑은 너무도 힘겹다. 겨울은 이래저래 우리에겐 무섭고 괴로운 계절이다.
오페라 <라 보엠> 제 1막에서 가난에 찌든 로돌프와 미미의 첫 만남에 흐르는 노래. 우연히 스친 그녀의 손이 차가워 애련하게 부르는 아리아다. 그렇지 가난한 사람의 손은 언제나 차가웠다.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 중, 그대의 찬 손 : 루치아노 파바로티 노래
그대의 차디찬 손 내가 녹여주리다
이 어둠 속에서는 찾아도 쓸데없소
다행히 달은 밝은 밤이요.
밝은 달빛은 이같이 가까이 있어 잠깐만 기다려오
내가 무엇을 하며 내가 어떻게 사는지 간단하게 말하리다
보시오 나는 꿈을 그리는 시인이라오
다만 시를 읊으며 가난하지만 기쁘게 부자같이 지내오
시와 사랑의 노래 아름다운 꿈과 이상의 낙원에서 마음만은 백만장자처럼
빛나는 그대의 눈동자가 조용한 내 마음 속에 불길을 던져주오
사랑스러운 그대의 눈길이 지나간 나의 꿈과 애타는 마음을 흔들어 주고 있고
내 말을 들었으니 이번엔 당신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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