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만리포 사랑

설리숲 2013. 11. 14. 00:52

 

 대전을 들러 마트에서 음식거리를 사가지고 떠나려는데 빗방울이 듣기 시작하더니 만리포에 다다를 때쯤엔 제법 쏟아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비였다. 봄내 가물더니 참말 예쁘게 대지를 적시고 있었다.

 난생 처음 가보는 만리포였다.

 궁금했다.

 그곳엘 가기 며칠 전 단편소설을 하나 완성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만리포라는 해변을 상상하며 기본 플롯도 구상도 없이 하룻밤에 써 갈긴 소설이었다. 황석영이 <삼포 가는 길>을 하룻밤에 썼다는 일화도 있거니와 그만하면 나도 제법 천재적인 소질이 있나 보다 혼자 흡족해 했었다.

 궁금한 건,

 상상력으로만 그려낸 만리포의 모습이 과연 어떨까 하는 거였다. 그러나 비도 내리는데다가 같이 간 일행과 먼저 도착해 있던 일행, 또 모임장소를 제공해 준 집주인 등이 서로 얽혀 인사하고 아는 체하는 와중이라 우선 그 집에 들어가 그간 보고 싶었던 사람들과 정담을 나누며 지짐에다 소주를 주고받으며 회포를 풀었다. 다들 흥겨워하는 듯 했으나 나는 이런 모임이 영 어색하다. 아니 싫다.

 

 

 

 

 소위 문학을 한답시고 거들먹거리는 이런 유의 군상이 나는 구미에 맞지 않는다. 글을 쓰네 어쩌네 하면 어디 가서 무슨 대우라도 받는 줄로 착각하는 근성들. 마치 세상의 모든 고뇌와 질곡을 다 짊어진 척 잔뜩 인상 쓰고 폼 잡는, 그런 자신의 모습이 그럭저럭 문학가다운 모양새인 줄로 착각하는 근성들.

그나마 문단에 등단하여 기성작가로서 근근이라도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또 그럭저럭 봐줄 만도 한데 기껏 인터넷카페에 모여 글줄이나 끼적거리는 게 전부인 궐자들이 무슨 큰 대가나 되는 것처럼 잔망을 떠는 꼴들이 나는 싫었다.

 그보다도 문단이라는 세계 자체가 참 더럽고 군색한 것이라는 걸 늘 느끼고 있던 터다. 진실을 파헤쳐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작가들의 본질이라고 믿는 나는 그런 것 따위 염두에 없고 오로지 제 앞길만 눈을 벌겋게 뜨고 파헤치는 자들의 집단인 문단에 염증을 느끼곤 했다. 인맥 학맥 지맥으로 둘러친 울타리들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그 세계는 예술가들의 집단이라 하기엔 너무 저열해 보였다. 어디 문단뿐인가. 음악계 미술계 체육계 등 감히 우린 아니라고 큰소리 칠 데가 있을까.

 이런 지나치게 부정적이고 못난 마인드를 지닌 내가 그날 만리포로 간 건 그 중엔 마음이 맞고 전혀 글 씁네 하는 티를 보이지 않는 그나마 서민적인 사람이 두엇 있어서 그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였고, 또 하나는 내 소설 속의 만리포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어서였다.

 몇 순이 돌고 저녁을 먹을 때까지 우리는 드디어 만리포 사장으로 나갔다. 내리던 비도 가늘어져 이슬비처럼 흩뿌리는 바닷가는 운치가 있었다. 다들 점잔을 떨었다. 막내격인 아가씨가 나 잡아봐라 하며 저쪽으로 쪼르르 내빼도 누구 하나 맞춰주는 사람 없다. 그저 고달을 빼며 들어오고 있는 건지 나가고 있는 건지 모를 물만 구경하고 있었다.

 

 그렇군. 나는 흡족했다. 가상의 D해수욕장과 그곳 만리포의 풍경이 그닥 다르지 않음을 확인했다. 아 역시 나는 천재작가의 기질이 있는가. 어중이떠중이 글쟁이들의 속성을 혐오하는 주제면서도 나는 스스로 자기만족에 빠져 그들과 다르지 않은 그저그런 놈임을 스스로 확인했다. 아 이 이율배반적인 추태여.

 

 

 

 

 

 

 

 

 

 

 

 

 

 그날 저녁에서 이튿날 새벽까지 글쟁이들은 마셔라 부어라 했고 술이 약한 나는 어느 때 먼저 잠들어 버렸다. 문득문득 잠결에 와 하는 웃음소리에다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싸우는 소리, 또 누군가 엉엉 우는 소리가 들렸다. 게다가 문득 눈을 떴는데 여자 하나가 나 잠든 방에 들어와서는 옷을 죄다 벗었다. 잠결에도 술이 억수로 취해 있어 몸 가누기가 힘들어 보였는데 팬티만 남기고 다 벗고는 다시 문을 열고 나갔다. 난데없는 스트립쇼에 밖에서는 와 하고 탄성을 지르는 사람도 있고 비난하고 질책하는 사람도 있고 그저 가관이었다.

 기본이 안된 것들, 느그들이 그럼 그렇지 어디 가서 쪽팔리게 글쓴다 하지 말거래이. 초라니 같은 것들. 나는 본능적으로 갖고 있던 혐오에다 그날밤의 추태를 향한 경멸을 보태 마음껏 욕을 해주었다.

 

 앞으로 글을 쓰지 말아야겠다. 나는 잠정적으로 그렇게 맘을 먹기 시작했다.

 

 

 

 그것이 2004년 늦은봄이었다.

 그때의 사람들은 이제 거의 사라지고 소식을 아는 사람이 없다. 카페에는 그후로 새로운 사람들이 들락거렸고 역시나 내가 경멸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듬해 2005년에 기존 만리포사랑노래비 옆에 만리포시비가 나란히 세워졌다. 그간의 전례로는 유명한 시인에게 청탁하여 시비를 건립하는 게 상식이었으나 태안군에서는 시비에 쓸 시를 공모하였다. 박미라 시인의 <만리포 연가>가 당선작으로 뽑혀 현재 그곳에 있는 시비가 그것이다. 박미라 시인 역시 내가 속해 있었던 카페의 회원이다. 그녀와 나는 같이 필화사건을 겪은 인연이 있다. 제천에서 유일하게 한번 만났을 때 웃으면서 그 사건을 이야기했었다. 그들을 모두 등진 지금 어느 누구도 근황을 알지 못한다. 문학은 그저 딜레탕트 수준이면 충분하다. 나야 워낙 부정적이고 못돼먹은 생각을 갖고 있지만 그들 모두 그들이 꿈꾸었던 문학 속에서 넓은 날개를 펼치고 있으리라 믿어 본다.

 

 

 

그후로 두어 번 더 만리포를 갔지만 그냥 스쳐가는 길이어서 눈에 담아 두지 못했었다. 이번 가을 하루를 꼬박 개길 작정을 하고 여유롭게 해변을 걸었다.

 

 

 

 

 

       만리포 연가

                                  

 

  멀어서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마른 모래바람이 가슴을 쓸고 가는 날이면

  만리포 바다를 보러 오시라

  오래된 슬픔처럼 속절없는 해무 속에서

  지워진 수평선을 가늠하는 붉은 등대와

  닿을 수 없어서 더욱 간절하다고

  아득히 잦아드는 섬이 있다

  누군들 혼자서 불러보는 이름이 없으랴

  파도소리 유난히 흑흑대는 밤이면

  그대 저린 가슴을 나도 앓는다

 

  바다는 다시 가슴을 열고

 

  고깃배 몇 척 먼 바다를 향한다

  돌아오기 위하여 떠나는 이들의 눈부신 배후에서

  고단한 날들을 적었다 지우며 반짝이는 물비늘

  노을 한 자락을 당겨서 상처를 꽃으로 만드는 일은

  아무렴, 우리들 삶의 몫이겠지

  낡은 목선 한 척으로도

  내일을 꿈꾸는 만리포 사람들

  그 검센 팔뚝으로 붉은 해를 건진다

 

  천년 전에도 바다는 쪽빛이었다

 

                                           박미라.

 

 

 

 

                          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 박경원 노래 : 만리포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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