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음악 이야기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설리숲 2012. 12. 28. 00:55

 사랑이 멀어질 때 인간의 감정은 어떤 충격을 받을까. 간혹 목숨을 버리는 경우도 접하고 자결까진 아니더라도 정상적인 범주를 벗어나는 강력한 트라우마를 보이는 경우가 허다한 걸로 보아 그 쇼크는 엄청난 것 같다. 요즘 신조어인 ‘멘탈붕괴’가 합당한 표현일 것 같다.

 금세기 최고의 디바로 추앙받는 가수 마리아 칼라스는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공포의 트라우마를 겪은 여인이다. 어느 것 하나 영원하지 않다는 것, 그러므로 사랑의 달콤함 역시 영원하지 않음을 모르는 바보는 없으련만 우리는 자주 그 진실을 잊곤 한다. 천부적인 재능으로 가장 높은 곳에서 아름답던 마리아였지만 사랑 앞에서는 연약한 어쩔 수 없는 여자였다.

 그리스의 부호 아스토틀 오나시스를 만나 그의 매력에 빠져 버린 그녀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팡개치고 만다. 가족들, 노래, 그리고 명성. 오나시스의 요트에서 황홀한 꿈의 나날을 보내며 더 이상은 오를 수 없는 인생 최고의 열락을 누렸으니 세간의 눈으로 보면 그녀는 세상 가장 행복하고 부러운 여인이었다.

 

 그러나 사랑은 영원하지 않고 그보다 더욱 믿을 수 없는 건 남자의 마음이다. 이혼까지 감행하며 오나시스의 사랑에 집착했건만 남자는 선뜻 그녀와의 결혼을 진행하지 않았다. 처음 만날 때 세상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한다며 값비싼 선물공세로 마리아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여자의 육감은 영락없어 이미 그의 마음을 감지하기 시작했지만 그래서 더욱 절박하게 그에게 집착했을 것이다.

 그리고 서서히 다가오는 배신의 두려움. 바람둥이 오나시스는 이미 다른 여인에게 마음을 돌리고 있었다. 재클린 케네디. 빼어난 미모와 학식, 우아한 언행, 미국인들의 존경을 받았던 퍼스트레이디. 단지 노래만 잘할 뿐인 마리아 칼라스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레벨의 여자였다. 그래서 그녀가 받은 상처는 너무도 컸다. 알려졌다시피 마리아 칼라스는 매우 표독스러웠다 한다. 자신의 명성을 등에 업고 안하무인으로 사람들을 대했다. 질투가 심하고 신경질적이고 노래만 아니면 가히 존경받을 만한 여자는 아니었다 한다. 그런 그녀였으니 재클린에 대한 질투가 오죽했을 것이며 종국에 오나시스에게 버림받았을 때의 흥분과 충격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사랑은 아름답다. 목숨을 건 사랑은 더욱 숭고해 보인다. 그러나 집착은 고통의 씨앗이다.

 오나시스는 재클린과 결혼을 하고 마리아 칼라스는 폐인이 되어 갔다. 가장 화려한 디바도 사랑에 무너져 그 명성에 걸맞지 않는 말년을 살았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허무한 것이다.

 마리아는 오랫동안 떠나 있던 무대에 다시 섰으나 예전의 목소리도 사라지고 대중은 그녀를 외면했다. 그녀의 마지막 공연은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였다. 자신의 처지와 흡사한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부르며 허무한 사랑 허무한 운명을 애련하게 목 놓아 불렀을 것이다.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중,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 마리아 칼라스

                  

 

                     나 고통 당할 때 하느님은 어찌 이리 버려둡니까.

 

 마리아 칼라스, 아리스토틀 오나시스, 재클린 케네디의 삼각 사랑을 흔히 세기의 스캔들이라 한다. 그 당사자들에겐 몹시 절박하고 어쩌면 지고지순한 사랑이라고 자신들은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세기의 연인이니 세기의 스캔들이니 하는 것들은 그들이 유명인이라서 하는 말이지 하나도 아름답거나 부러울 것 없는 그저 그런 불륜에 지나지 않는다.

 돈 많은 남자에 미쳐 자신의 명성을 만들어준 남편을 버린 여자의 행각을 사랑이라 할 수 있나. 일국의 퍼스트레이디로 국민의 칭송을 받던 여인, 남편이 총을 맞고 죽은 영부인이 몇 년 되지 않아 부호로 세간에 떠르르하던 남자와 벌이는 행각도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과연 여인들은 진정 그 남자를 사랑했을까. 오나시스가 부호가 아니고 평범한 남자였다면 그래도 그렇게 집착했을까. 그가 사치와 향락을 제공하며 값비싼 선물공세로 여자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지 않았다면 나이도 훨씬 많은 늙은이를 과연 사랑했을까 말이다.

 여전히 회자되는 그들의 ‘세기의 로맨스’는 그저 천박한 불륜행각을 화려하게 치장한 것 이상은 아니다. 결국은 모두가 허무하게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