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든 수필이든, 전문적 글이든 잡글이든, 길든 짧든
글은 썼는데 제목을 못 붙여 난감할 때가 자주 있다. 기실 본문보다도 제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머리를 쥐어짜야 하는 것이다.
길고 긴 장편소설은 아주 많은 분량을 쓴 것 같지만 작가는 단 한 줄의 메시지를 쓰기 위해 그렇게도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그가 하고 싶은 언어는 맨 첫머리에 둘 수도 있고 맨 마지막에 두기도 한다. 그 한마디를 쓰기 위해 숱한 고뇌를 하고 정신적인 방황과 육체적인 고통을 끌어안는 것이다. 그리고 제목을 붙이면서 마지막 화룡점정을 찍는다. 제목은 그래서 최고의 난이도가 된다.
사견으로 가장 빼어난 제목의 글은 황순원의 <소나기>다.
작품 속의 소년에게 사랑은 소나기처럼 예고 없이 밀려 왔다가 허무하게 사라진다. 제목인 <소나기> 한 낱말에 소설 한 편이 다 들어가 있다. 어느 토요일 오후 소나기로 인해 시작된 사랑은 결국은 소나기 때문에 시리게 파국을 맞는다. 소녀가 비를 맞은 후유증으로 병을 앓다 죽으니까 말이다. 아 황순원은 얼마나 위대한 문학가인가.
경기도 양평에 황순원문학관을 짓고 소나기마을을 조성해 놓았다. 글쎄다. 양평이 소나기와 관련이 있기라도 한가. 물론 소설 속에 양평이 등장하긴 한다. 윤초시네가 양평 읍내로 이사 가기로 했다는 부분. 그렇다고 작품의 배경이 양평이라는 증거는 없다. 문학관 설립취지에 이러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소나기의 무대배경이 양평으로 추측된다고 설명은 하고 있지만 이현령비현령 다른 어느 지방에 가져다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양평이 아니라는 증거 또한 없다.
소나기를 피해 들었던 원두막과 작품의 핵심인 '사랑'을 만들어 주는 수숫단을 세워 놓았는데
이왕이면 진짜 수숫단으로 해 놓으면 좋을 걸 너무 어설프게 만들어서 안 해놓으니만 못해 보인다.
춘천의 김유정문학촌에 그의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생강나무를 잔뜩 심어 놓은 것처럼
이곳에는 금마타리를 문학관 앞에 빽빽하게 심어 놓았다. 소녀가 노란 마타리를 양산처럼 들어
보이는 장면이 나온다. 바야흐로 꽃망울이 터지려고 잔뜩 부풀고 있는 늦여름의 뙤약볕이다.
자연 풍경 안에서의 아름다움이지 인공적으로 가꾼 시멘트화단의 마타리는 참말 생뚱해서
그 아름다움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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