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이든 청송이든 별 차이도 없는데 맘이 허전해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정든 숲을 떠나는 당신 마음은 어땠을까요?
제가 일하는 기관은 학대받은 아이를 일시 보호하는 쉼터라는 부설기관이 있어요. 한 아이가 6개월 정도 있다가 떠나게 되어 지난 주엔 불러서 그 사실을 알려주었지요. 그 아이의 엄마는 결국 딸 대신 딸을 성학대한 자신의 애인을 택했으므로 엄마가 있는 집으로 가지 못하고 장기보호시설로 가게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쉼터에서 편안하게 잘 지내고 떠나기 싫어하지요. 그 아이도 소식을 듣고는 웃는 얼굴로 제게 이것 저것 물었지만 아이의 슬픔과 불안이 전달되었습니다.
쉼터로 돌아가는 아이를 배웅하기 위해 바깥까지 나갔는데 늦겨울 바람이 유난히 차게 느껴졌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자리로 돌아와 앉으며 불변의 진리를 다시 한 번 일깨우며 정신을 차렸습니다.
한 순간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는 착각을 일으키며 감상을 젖어드는 자신에게 거리를 두면서요.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그것이 도저히 가능하지가 않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절망감과 고독감은 아주 컸습니다. 고독의 근원도 결국 그것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로지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
타인과 생각이나 감정을 함께하거나 나누는 일이 얼만큼이나 가능할까요?
우리가 진정으로 타인을 위로할 수 있을까요?
흔히 주파수가 통한다는 말을 하지요.
홀로인 사람이 끊임없이 누군가를 찾는 것도 스스로를 위로하고 보존하기 위한 자구책이라 생각합니다.
주파수가 비슷하고 영이 통하는 사람을 찾아 교감을 나누길 원하지요.
그래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그래도 홀로인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예수도 십자가에서 홀로 죽어갔고, 모든 사람도 그렇게 홀로 살아가고..죽어가고..
어느 목사님은 "모름지기 모든 인간관계는 우정관계로 승화애야 하고, 모든 인간관계는 함께 가는 동행이 되어야 하는데, 우정관계만이 대동하고 대등한 관계이기 때문이다"고 했습니다.
관계나 장소를 떠나 생각과 감정을 주고 받으며 동행할 수 있는 벗이 있다면 얼마나 큰 행운일까요?
남자 여자라는 한계, 결혼과 같은 제도의 한계(결혼은 여자친구와도 멀어지게 하죠), ...등의 조건들에 의해 소원해지는 것이 보통이죠.
당신이 말한 것 처럼 인생이라는 여행길에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얼마간 동행하기도 하고 금방 헤어지기도 하면서.
사람은 그 본성이 '홀로'이니, 그 처럼 끝이 보이는 동행자일지라도 감사하고 같이 가는 길 만큼 동행하면서 가면 되겠지요.
당신은 마음이 편안하고 유쾌한 길동무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당신이 언제까지 나와 함께 동행해줄지는 모르겠지만 가는 동안은 즐겁게, 때론 위로를 받으며 함께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마르틴부버의 <나와 너> 읽어보셨어요?
저는 대학 때 그 책 읽고 많이 울었어요.
오늘, 책 보러 도서관 갔다가 허탕쳤어요. 삼일절인걸 깜박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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