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초록의 茶園에서

서산일락(西山日落)이로구나

설리숲 2012. 6. 5. 22:26

 - 지는 해는 왠지 기분이 나빠

 

 권 선생님이 중얼거린다. 지리산 서쪽 능선으로 뉘엿뉘엿 저녁 해가 지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 바알간 햇살이 가득하다.

 

 - 전에 전라도 어디 놀러 갔는데 나이 꽤나 든 여자들이 을매나 시끄럽게 떠들며 말이 많은지 그 꼴이 보기 싫어 속으로 지는 해 주제에 뭐가 즐겁다고 저리 떠들어쌌노 그랬는데 이젠 내가 지는 해가 돼삤네.

 

 표정과 더불어 음성에도 쓸쓸함이 한껏 묻어 있다. 내가 아는 권 선생님에게서 뜻밖의 일면을 본다.

 강렬하게 붉던 저 해도 떨어지고 마는구나.

 

 - 그치만 내일 아침엔 또 떠오르겠지요.

 

  위로랍시고 내가 생각없이 뱉어낸 말인데 참말 되지도 않는 말이다.

 

 글쎄.

 영원에 가까운 저 태양이 다시 떠오르는 것과 사람이 같지는 않겠지. 윤회설을 믿는다면 이승에서 진 사람이 내세에서 환생하는 것일진대, 아 이 막막함이여.

 이 인생은 정녕 허무한 공간이로구나.

 

 늦봄의 그 저녁. 이윽고 서산 해는 져 버렸다. 어둠이 내린다.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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