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초록의 茶園에서

사랑

설리숲 2012. 6. 11. 21:17

 우리는 사랑을 보았다.

 

 문득 보게 된 유리창 밖의 광경.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는데 어째 태가 이상하다. 죽은 듯이 꼼짝 않고 있더니 이윽고 어기적대고 날갯짓을 하려 하지만 좀처럼 움직이질 못한다. 어디서 다쳐 가지고 왔는지 혹 유리창에라도 부딪쳤는가 사력을 다해 용은 쓰지만 도무지 움직여 주질 않는 그 몸뚱아리를 보며 내가 더 안쓰러웠다.

 그런데 또 비둘기 하나가 날아와 동료 옆에 서서는 내내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동료가 아니라 짝일 것이라 짐작한다. 다친 비둘기가 수놈이고 날아온 비둘기가 암놈인 걸로 보아 짜장 그렇다. 수놈은 푸덕거리고 암놈은 지켜보는 광경이 이어지다가 차츰 정신이 돌아오는가. 미미하지만 수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날갯짓은 언감생심이고 겨우 두발을 움직여 조금씩 이동한다. 그 곁을 암놈이 따라간다. 나는 창문너머 구경하지만 창밖 그곳엔 나 말고도 여러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암놈은 짝을 위해 사람 가까이 내려와 앉았고 내내 수놈을 지키면서 회복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아 저 심정은 얼마나 안타깝고 애틋할까. 연인의 고통을 지켜보는 심정이야 사람이건 짐승이건 다르지 않으리.

우리는 행여 그들에게 위협이 될까 일부러 멀리 에둘러 다니면서 역시 빨리 회복해 다시 날기를 바랐다.

수놈은 조금씩 움직여 개울가로 나갔다. 물가엔 갈대가 우거져 있다. 그 풀숲으로 들어가 사람들 눈에 더 이상 띄지 않았다.

 암놈은 풀숲을 연신 들락거리며 안절부절 못하는 태가 역력했다. 숲으로 날아가서는 먹이를 물고 갈대숲으로 들어가곤 했다. 아, 사랑이구나.

 날이 저물도록 암놈은 제 몸을 돌보지 않고 그렇게 고된 간호를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 이상 그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후 어떻게 되었는지 다음날엔 부지런히 드나드는 암놈이 보이지 않았다. 수놈이 회복이 되어 날아갔든지 아님 안타깝게도 슬픈 결말이 있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다만 눈물겨운 그들의 사랑에 가슴이 막막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이! 니들이 사람보다 낫다. 인두겁을 쓰고 온갖 행악을 일삼는 오사리잡놈들이 인간 세상엔 참 많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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