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리가 한 마리 죽어 있었다. 자기방어가 뛰어난 오소리가 어쩌다 물가에 와서 죽었을까. 돌에 부딪쳤는가 주둥이에서 흐른 피가 돌멩이에 벌겋게 굳어 있다.
인생사고(人生四苦) 제행무상(諸行無常)
어느 것이나 생로병사의 고통을 지고 있으며 또한 영원한 것은 없으니 뭇 중생 중 하나가 죽어 널브러져 있다고 그리 안타까워하지는 않더라도.
길고 혹독한 겨울을 웅크리고 있다가 비로소 봄이 가까이 오는데 바야흐로 시작될 화려한 나날을 목전에 두고 스러져 간 목숨이 가엾긴 하다. 어쨌든 생명의 소멸은 허망하고 가여운 것이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사체를 묻어 주었다. 자비심보다는 청결을 위한 마음이라 해야겠다. 그냥 놔두면 부패한다. 더구나 개천 바닥이니 물이 오염되니까.
삽으로 땅을 파다 보니 뜻하지 않은 또 다른 살생을 하고 말았다. 지렁이가 두어 마리 삽날에 몸을 잘려 꿈틀거렸다. 한 생명을 거두면서 저지르는 악의 없는 살생.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살생을 하고 있는가. 무심코 내딛는 발걸음 아래에 수많은 생명들이 죽어 가고 있다. 예전에 한 TV 프로그램에서 실제로 사람이 디딘 발자국 밑의 흙을 퍼서 전문가들이 조사를 했는데 대략 30만 마리의 생물 미생물이 서식하고 있음을 보았다.
스님이 말했다. 걸음을 걸을 때도 조심스레 발걸음을 디뎌라. 발 아래 신음하는 뭇 생명들을 중히 여겨라.
아 그래서 스님들의 신발은 고무신이요 걸음이 그리도 가볍고 조신한 거구나. 그것은 수행의 방법이 아니라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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