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음악 이야기

시대의 흐름을 바꿔 놓은 '난 알아요'

설리숲 2011. 10. 22. 00:24

 

 1992년 한국 대중음악의 흐름을 바꾼 사람이 있었다.

 서태지.

 팀 이름은 '서태지와 아이들‘이지만 ’아이들‘은 거론하기 민망한 존재고 기실 서태지라는 한 인물의 탄생이었다.

 서태지는 가수가 아니다. 아티스트라 하기도 어색하다. 그저 음반기획자라 하면 좀 그럴듯한 표현이 될듯하다. 그렇다. 그는 유능한 음반기획자다. 천재적인 감각으로 시대를 앞선 음악으로 음악사의 한 획을 그었다. 천재적인 감각이라 했지만 나쁘게 표현하면 영악하다. 그는 일찌감치 자신의 미래를 보고 커다란 야망을 품었던 것 같다.

 알다시피 서태지는 록그룹 시나위의 멤버였다. 시나위는 록도 아니고 강력한 사운드(헤비메탈에는 약간 못 미치는 어정쩡한)를 구사하는 그룹이다. 나중에 서태지와 아이들로 재데뷔한 후 보여준 댄스곡 하고는 아주 거리가 멀다. 거대한 야망을 품었다는 것은 이후의 행보로 보인 결과에 따른 내 추측일 뿐이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관을 가지고 있다. 은퇴하고 미국에 있다가 컴백해서 내놓은 음반들이 그것이다. 분명한 장르를 모르겠다. 하드코어라고 평범하게 정의하기로 한다. 그는 그 장르의 음악을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 난해한 음악은 대중들이 외면할 게 뻔하다. 여기서 그의 사업가 기질이 빛을 발한다. 우선 대중의 시선을 끌어야 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댄스음악이다. 남보다 앞서가야 한다. 춤 잘 추는 멤버를 구성하여 드디어 서태지와 아이들이 대중 앞에 툭, 튀어 나왔다.

 

 그리고 세상은 서태지의 세상이었다. 그리 모나지 않은 평범한 노래가 세상을 뒤흔들며 가장 강력한 슈퍼스타를 배출해 냈다. 이후 폭발적인 흥행을 이어가며 서태지는 ‘문화대통령’의 기초를 탄탄히 쌓았다. 그리곤 정해진 순서대로 은퇴했다. 대중을 포섭하기 위해서 자신의 음악인 하드코어를 등 뒤에 숨기고는 그들의 입맛에 달달한 댄스음악을 펼쳤으며 자신이 작전이 성공하자 그대로 내려온 것이다. 이미 서태지라는 마약에 길들여진 대중은 그 중독성에 목말라 한다. 서태지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음 단계로의 준비를 착수하게 된다. 다시 말해 댄스음악은 결코 그의 음악이 아니고 단지 지명도를 올리기 위한 수단이었다.

 결국 서태지와 아이들의 ‘아이들’은 그의 야심에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그 결과로 보인다. 그렇다고 그들이 이용만 당했다는 것은 아니다. 경과야 어쨌든 그 경험을 밑천으로 두 사람 역시 후에 대중문화계의 큰 봉우리에 올라 군림하고 있으니까. 이렇게 서태지는 교활할 정도의 재능으로 자신의 앞길을 개척해 현재의 위치에 있게 됐다. 은퇴한 후 다시 컴백했을 때 세상은 다시 열광했다. 마약에 중독된 이들이 다시 그것의 달콤함에 탐닉하듯이 그에게 빠져들었고 그는 서태지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상상을 초월하는 부를 축적한다.

 

 솔직히 그의 하드코어적인 음악은 낯설다. 더 솔직히 재미없다. 소수의 마니아층 아니면 그걸 음악이라고 돈을 주고 사서 듣지는 않을 것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나 역시 별로 와 닿지는 않는다. 낯설고 난해하고 그러니 감성을 자극하지도 않고. 그렇지만 듣지는 않고 처박아 둘지언정 서태지라는 이유만으로 대중들은 아낌없이 돈을 뿌리고 음반을 사고 열광했다. 과연 희대의 스타다.

 

 

 

 

 

 

 세상을 바꾼 이 노래 <난 알아요>.

 이 글을 쓰려고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독일의 듀오 ‘밀리 바닐리(Milli Vanilli)’가 떠오른다. 사실 표절이라고 소송을 걸어도 말 못할 정도로 ‘난 알아요’는 밀리 바닐리의 <Girl, You Know It's True>와 흡사하다. 곡 멜로디는 다르지만 편곡과 반주가 똑같다. 같은 반주에 두 곡을 불러도 될 정도로. 뭐 표절인지 아닌지는 당사자의 양심 아니면 감히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니까 더 말할 것은 못된다. 더구나 그래미상을 수상하는 등 당시 가장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던 빌리 바닐리도 실은 가짜 가수였음이 곧 들통 났으니까. 노래를 부른 사람들은 따로 있고 빌리 바닐리 두 명의 멤버는 그저 입만 뻐끔거리며 노래하는 척만 했던 허수아비였던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 상대의 사기극이었다. 그러니 서태지가 그 곡을 표절했다고 해도 그쪽에서 소송을 걸만한 주제는 아니었다.

 

 

 어쨌든 <난 알아요>는 대중음악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해외에선 MC해머를 위시한 이른바 랩송이라는 게 주류처럼 부흥을 이루고 한 시대를 풍미하고 지나갔지만 한국에는 서태지의 이 노래로 그 시대의 막을 열었다. 한국말로는 랩이 도저히 안 될 것 같았고 누구도 감히 시도해 보려 하지 않았던 걸 서태지는 ‘난 알아요’에 멋들어지게 접목했다. 아, 우리말로도 랩이 되는구나. 번쩍 눈을 뜬 사람들이 너도나도 노래에다 랩을 집어넣었다. 그 이후로는 지겹게도 이 랩들이 쏟아져 나왔고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아이돌의 노래에 랩이 안 들어가는 곡을 찾기 어려울 정도여서 오히려 부정적인 시각으로 흐를 정도다.

 아이돌 그룹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고 노래 능력 대신 댄스에 비중을 두었다. 팀 구성에는 반드시 래퍼를 두었고 댄서를 포함시켰다. 일각에선 이런 천편일률적인 행태들이 한국의 대중음악을 퇴보시켰다고 하기도 한다.

 

 

 한국의 대중음악사를 서태지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고 조금 과장되게 평을 할 정도로 서태지가 그 획을 그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70년대 신중현이 일렉트로닉으로 음악의 흐름을 바꿨고 80년대 산울림이 록 사운드의 시대를 연 것에 필적할 만한 큰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그때는 몰랐는데 세월이 지나고 나서 다시 들어보는 그의 노래들이 참으로 세련됐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곤 한다.

 그는 아무래도 가수는 아니다. 아티스트도 아니다. 단지 음반기획의 천부적인 사업가라고 나는 평가한다.

 

 

 

                                                   서태지 작사 작곡 노래 : 난 알아요                             

 



 사족:

충청도 말이 느리기는 해도 그 말마디는 아주 짧고 간소하다고.

 

 

 “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 누군가가 나를 떠나 버려야 한다는 그 사실을 그 이유를 이제는 나도 알 수가 알 수가 있어요”

 

이 긴 문장을 충청도 사람은

 

 

 낸 알지유 낼 아칙에 언눔인가 떠난대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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