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본래 엇나가려는 속성이 있어 가끔 우리는 가깝고 걷기 좋은 길을 두고 산길로 해서 등교를 했다. 그 길에서 어느 날 신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누군가 잃어 버렸을 피리를 주웠다..
집안은 가난했고 심성은 소심해 다른 아이들은 다 가진 피리를 나는 갖지 못하였다. 선생님은 왜 피리로 음악수업을 하는지 피리가 없는 아이들은 그 시간이 무척 싫었다. 일상이었다. 나는 필통도 없었고 스케치북도 없었고 더욱이 화판도 없었다. 미술시간엔 뭐 그리 준비물이 많은지 나를 비롯한 가난한 아이들은 고역이었다. 요즘도 역시 그럴 것이다. 아이들 준비물 챙겨 주다 보면 그 옴니암니가 만만치가 않다.
그리 소원하던 피리를 그 아침 등굣길에서 얻은 것이다. 무협소설에서 주인공이 뜻하지 않게 비기를 얻어 강력한 내공을 쌓아 강호의 고수가 되곤 한다. 나는 하늘이 내려줬을지도 모르는 피리로 무림의 고수가 되고 싶었다.
피리는 내게 너무나 쉬운 악기였다. 운지법을 익히고 동요 따위는 쉽게 통달했다. 집에만 오면 나는 늘 피리를 불었고 또 웬만한 유행가는 연습 없이 한 번에 연주했다. 아쉬운 건 이놈의 피리는 반음이 없다는 것이다. 유행가의 대부분은 반음이 한 번 이상은 들어가 있었기에 아무리 날고 기는 고수라도 그 노래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 제한된 레퍼토리지만 그 수는 엄청 많았기에 나는 무림의 고수로 오르려는 잠룡의 내공을 쌓고 있었다. 뒷집에 사는 또래의 여자아이는 그런 나를 추켜세워 주었다. 바자울타리로 살피를 지은 이웃이라 그 집에서 밥 먹을 때 숟가락 긁는 소리도 쟁명하게 들릴 정도였다. 그 아이는 늘 내 피리소리를 들으면서 생활하는 셈이었다. 다른 아이들에게 내 피리를 엄청 칭찬하고 대단한 실력이라고 추켜세우곤 했다.
나는 기고만장했다. 사실 그 누구 앞에서도 피리를 연주해 보지 않았다. 내 관객은 오로지 그 아이 하나였다. 그럼에도 나는 이 세상 가장 높이 우뚝 선 피리연주자가 된 듯 거늑한 심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피리의 무공을 보여줄 기회가 왔다. 선생님은 피리에 걸신들린 사람인지 그날도 역시 피리수업이었다. 나를 비롯해 몇몇이 지목을 당해 피리 시연을 하게 되었는데 무슨 곡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내 연주는 제법 만족스러운 연주였다는 걸로 기억된다. 분위기나 아이들의 표정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몹시 기분이 좋았는데 어느 아이 하나가 태클을 걸고 나왔다. 아마 제 딴에도 내가 아주 잘한 걸로 들렸나 보다. 조직사회에서는 그런 사람이 꼭 있기 마련이어서 그 아이는 내게 샘이 났을 거다. 시기심과 경쟁심으로 자기도 하겠다고 자청하고 피리를 불었다. 그리고 나는 강호에서 물러나왔다.
그 아이는 참말 피리의 대가였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다른 사람들은 아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듣는 그의 피리는 내 무공을 훨씬 뛰어넘는 최고의 연주였다.
그토록 자신만만하고 기고만장했던 나는 그만 모든 의욕을 잃고 피리에서 흥미를 잃고 말았다. 강호에서 떠난 게 아니라 아예 발조차 들여놓지 못 했다는 게 맞는 말이다.
어린 시절의 한 에피소드가 평생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로부터 평생을 무대공포증을 지니게 되었다. 혼자서는 연습하듯이 막힘이 없지만 하나든 둘이든 열이든 누구 앞에서 연주를 할라치면 가슴이 떨리고 영 불안해 중간에서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거나 끝까지 간다 해도 엉망이기 일쑤여서 듣는 사람이 더 불편할 지경이었다.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기타에 심취해 죽어라고 두들기며 노래하며 나달을 보냈다. 그때도 내 기타 솜씨는 꽤 괜찮았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듣고 있으면 나는 가슴이 떨리고 오줌이 마렵도록 정신이 몽롱해져 숨이 멎을 지경이 되곤 했다. 내 연주를 나보다 고수인 그 누군가가 들으면서 평가하고 비웃을 것 같은 무대공포증이었다.
지금 나는 오카리나를 분다. 숲에서 부는 나의 오카리나는 맑고 청아하고 신비롭다. 스스로 연주에 취하기도 한다. 아아 나는 진정 오카리나의 고수다.
그렇지만 청중 몇을 앞에 놓고 하는 연주는 역시 젬병이다. 한 사람만 있어도 무대공포증이 엄습해 손가락이 말을 안 듣고 그보다는 호흡이 가빠져서 음정도 박자도 난장판이 되는 것이다. 내 연주의 관객은 오로지 나 하나다. 다른 사람은 내 관객이 될 수 없다.
아아 불행한 연주자여. 불세출의 예술가여.
와! 이게 오카리나라는 거야 오빠?
아무나 구경 못하는 건데 너만 보여주는 거다.
오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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