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몰아 강변을 달린다. 봄의 절정이다. 차 안은 한여름 찜통이다. 창을 내린다. 청량한 바람. 강물은 눈부시다. 세상은 온통 벚꽃 천지다. 아마도 벚나무 그늘 마다 사람들로 그득하리라.
세상은 이토록 눈부시고 아름다운데, 나는 비운에 간 여인 하나를 생각한다. 아름다움이 극에 달하면 오히려 슬퍼지는 이율배반인가.
라디오에서 첼로곡 하나가 흘러나온다. 둔중한 슬픔. 본래 첼로소리가 무겁고 비장하지만 벚꽃 흩날리는 이 아름다운 봄날에 그것은 더욱더 무겁게 가슴을 누른다.
재클린의 눈물.
이 슬픈 곡은 프랑스 작곡가 오펜바흐의 작품이다. 1800년대 중반의 인물인 그의 이 작품은 아주 최근에 발표된 곡이다. 발표라기보다 발견된 작품이다. 오랫동안 묻혀 있었던 이 곡은 어느 여인의 추모곡으로 헌정되어 오펜바흐와는 전혀 상관없는 제목으로 세상에 알려진다.
재클린 뒤 프레(Jacqueline Du Pre).
가장 촉망 받는 전도유망한 젊은 첼리스트가 있었다. 누구나 그녀의 화려한 앞날을 기대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스무 두 살 때 역시 전도유망한 피아니스트와 결혼하여 그녀는 예술과 사랑 모든 것을 얻었고 그것을 누리기만 하면 되었다. 그의 남편은 훗날 가장 독보적인 음악가로 성공한 다니엘 바렌보임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명성에서는 단연 재클린이 우위였다. 떠오르는 신예였던 다니엘은 그녀의 명성을 배경으로 업고 승승장구 음악계의 중심으로 들어간다.
화려한 앞날이 보장됐던 재클린은 그러나 가련한 날개가 꺾이고 있었다. 연주에서 실수가 잇따르면서 그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그녀의 몸은 ‘다발성경화증’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몸이 굳어지는 증세의 무서운 병이다. 그녀는 화려한 날갯짓을 접고 고통스러운 투병으로 오랜 세월을 보낸다.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42세에 그 슬픈 삶을 마감하고 만다. 1987년이다.
남편 다니엘은 아내가 쓰러진 후로 한번도 찾질 않았다고 한다. 토사구팽이랄까. 그녀의 후광으로 승승장구하고는 그녀가 고통에 신음하고 절박한 상태에 빠지자 냉정하게 이혼을 했다. 그리고 그의 음악인생은 더 이상은 오를 수 없는 최고의 부와 명예를 누린다.
사랑은 얼마나 헛된 것인가. 부질없는가. 오늘날 최고의 거장으로 추앙 받는 다니엘 바렌보임에게는 사랑을 짓밟고 성공에의 욕망을 탐한 냉혈한이라는 불명예가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누구를 탓하지도 원망할 일도 아니다. 그것이 그의 운명이고 인생이고 또한 짧은 생을 살다 간 재클린의 운명이다. 다만 사랑도 예술도 가질 수 없었던 그 운명이 좀더 슬픈 것일 뿐.
재클린 뒤 프레가 사망하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모했다. 그 중에 독일 첼리스트 베르너 토마스 미푸네가 우연히 발견한 곡을 재클린에게 헌정했다. 그리하여 오펜바흐가 사라진 100여년 후에 이 곡은 ‘재클린의 눈물’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너무나도 유명한 이 곡이 나온 건 그러니까 겨우 20여년에 불과한 셈이다.
작곡을 한 오펜바흐도, 자신의 이름이 붙여진 재클린도 실은 이 모든 것들을 알지 못한 채 누워 있고 살아남은 자들이 다만 저들의 사치와 허영을 충족하며 줄기차게 이 곡을 연주하고 또 들을 것이다.
드뷔시, 라벨 등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작곡가들의 음악은 사실 별로 재미가 없다. 개인취향이겠지만 이들의 음악은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평행선을 달리는 것 같다. 극적인 클라이맥스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에 매료돼 한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로 마력적이라 한다. 나는 그 경지까지는 경험을 못해 봐서 어쨌든 좀 지루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프랑스인이면서도 비제가 각광을 받는 것은 이러한 보편적인 성향에서 툭 튀어나와 아주 독보적인 음악을 구사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곡 ‘재클린의 눈물’은 비제 같은 드라마 요소들이 가미되지 않았는데도 사람의 심금을 자극하는 묘한 마성이 있다. 더구나 육중한 첼로가 울려는 선율은 한 여인의 슬픈 삶에 기댄 인간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옥죈다.
게다가 이렇게 벚꽃 잎이 흩날리는 봄날의 강변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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