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음악 이야기

음악은 가르치는 게 아니야

설리숲 2011. 12. 13. 19:54

 

 선교라는 허울로 그들은 무자비하게 다른 민족을 말살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총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었다. 앞선 기계문명의 위력을 업은 백인들은 자신들이 가장 우월한 민족으로 알아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죄다 미개인으로 치부했다. 19세기 유럽의 제국들은 이렇게 앞 다퉈 각지로 약탈의 역사를 만들었다. 그 여정에는 기독교가 함께 동행했다. 선교사들은 부족의 문화와 종교를 말살했고 마을의 당산나무를 베었다.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들에게 피의 살육을 벌였다.

 

  그들은 스스로 문명인이라 자임하며 원주민들을 개화하려 했다. 돌이켜보면 그들의 행위는 침략 약탈 이상은 아니다. 세계 각국은 그 후유증에서 여전히 신음하고 있다.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아프리카의 영토문제. 그곳은 지금 이 시간에도 잔학한 피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그때 원주민이 백인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여기 왜 왔는가?

 백인들이 대답했다.

 우리는 너희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러 왔다.

 주민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음악을 가르친다고?

 

 “음악은 가르치는 게 아냐. 음악은 그냥 하는 거지”

  그들이 넌지시 이방인에게 충고했다.

 

 

 음악은 만드는 게 아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와 음과 영혼을 조합하고 간추려 그것을 그냥 하는 것이다. 음악 선진국이 있고 후진국이 있겠는가. 이름 모르는 아프리카의 소년이 두들기는 북소리는 사람의 밑바닥 심성을 건드리는 가장 위대한 음악이다. 바흐나 모차르트가 종이에 그려 넣어 만든 음악을 고급 음악이라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인공의 산물이다. 고기는 바다에서 건져 올린 것을 먹지 인공적으로 만들어 먹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의 노래는 악보가 없다. 그냥 전해들은 대로 하는 것이다. 그런 음악이 일견 세련되게 조탁한 서양음악보다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이다.

 

 사물놀이는 특별한 멜로디가 없다. 그저 타악기로만 두들겨대지만 얼마나 오묘한 감동을 주는가. 사물놀이는 미스터리다. 음악의 음자도 모르는 초등학생들이 어설프게 두드리는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그냥 빠져든다. 아마 한국인만의 정서와 혼과 넋이 밴, 그 토양에서 자연히 생겨난 음악이라 그럴 것이다. 사물놀이 뿐이겠는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다 이런 음악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작금 우리의 젊은 음악가들이 유수의 콩쿠르에서 많이 입상하고 있다. 좋은 일이다. 우리의 음악수준이 높아졌다고들 하기도 한다. 우리들 개념은 서양의 클래식을 하는 것이 상위의 음악가라고 인식하는데 문제가 있다.

 나는 차이코프스키를 좋아하고 슈베르트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그들만이 최고라는 생각은 아니다. 우리의 정가를 들으면 삼라만상의 모든 정과 기를 느끼곤 한다. 슬픔과 고독과 탄식, 기쁨과 열락과 탄성을 느끼곤 한다.

 

 

 

                                    

  울라리(Ulali) - Mahk Jchi (심장을 두드리는 북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