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지어 붙일 때는 엄청 고심을 했을 거다.
엄마아빠가 아기의 이름을 지을 때도 그렇고, 인터넷상 아이디를 지을 때도 아무케나 찍어다 붙이진 않을 게다. 고심고심 머릴 짜내서 만들어낸 게 현재의 이름일 거다.
초롱꽃.
그냥 초롱꽃이겠거니 하지 왜 초롱꽃인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초롱이 뭔지 모르겠지.
주위에 흔한 사물의 이름을 붙인 경우가 많다. 농경생활에서 얻은 이름이다.
절굿대 부지깽이풀 접시꽃 젓가락나물 족도리풀 종덩굴 등등 사물의 모양을 빌어 지은 이름들이다. 고슴도치풀 까치수염 노루오줌 며느리밑씻개 꿩의다리 요강풀 등 재미있는 이름도 있다.
초롱은 옛적에 등잔불이나 남포불을 쓰던 시절에 석유를 받아두는 양철통이다. 한 초롱, 두 초롱... 하고 수를 세는 단위였다. 또한 시골에서는 물을 긷는 통을 초롱이라 했다. 아낙이 머리에 이고 긷는 건 동이라 했고 남정네가 물지게 양편에 매달아 긷는 것을 초롱이라 했다. 요즘의 바케쓰다. 바케쓰가 일본말이라고 양동이라 고쳐 쓰긴 하지만 초롱이란 말이 더 적합하다.
여기서 파생된 말이 초롱불. 초롱처럼 생긴 등불이다.
내 큰형이 장가갈 때, 사주단자를 진 패거리가 청사초롱을 앞세우고 마당을 나갈 때 컴컴한 대문 앞을 밝히던 그 영롱하지만 아슴한 불빛의 기억이 있다. 별보다 아름답던 붉은 초롱불. 으어으어 청년들의 흥겨움이 가득하던 그 초저녁의 설렘. 수줍음, 평생의 약속, 결혼, 사랑 그 모든 것들.
초롱꽃.
요즘 산내들에 지천이다.
저 통꽃잎 안에 불을 밝히고 초저녁 어둔 삽짝문을 나가 어여쁜 이웃처녀 만나고 싶다.
그러나 내 큰형은 백년해로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먼저 떠나 버렸다.
별초롱 꿈초롱
아기가 잠드는 산골집에
밤마다 찾아오는 이상한 저 별
빨간 초롱 들고서 마중 나온다
파란 초롱 들고서 마중 나온다
아기가 꿈꾸는 강마을에
밤마다 찾아오는 이상한 저 별
은빛 초롱 들고서 마중 나온다
금빛 초롱 들고서 마중 나온다
'서늘한 숲 > 숲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뚱딴지 같은 돼지감자 (0) | 2018.06.19 |
---|---|
지친다 지칭개 (0) | 2018.06.16 |
영주 곰네미 숲길 (0) | 2018.06.11 |
노란 금계국이 만발하니 여름이구나 (0) | 2018.06.04 |
가을의 여인 층꽃나무 (0) | 2018.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