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설리숲 2007. 6. 19. 20:21

 

 어렸을 적에 <코끼리 묘지>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는 충격에 빠졌었다.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다.

 코끼리는 무리를 지어 살아간다. 그런데 무리 중에서 가뭇없이 사라지는 코끼리가 있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코끼리들은 스스로 제 죽음을 알고 어느 날 먼 여행길을 떠난다. 말이 여행이지 기실은 죽으러 가는 것이다.

 길을 가다가 그래도 힘이 남으면 연명을 하고 그 기력마저 다하면 그곳이 자신의 무덤이 된다. 그런데 신기한 건 모든 코끼리의 죽음이 거의 동일한 곳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조상의 뼈가 있는 그곳에 후손들도 뼈를 남기고 사라진다. 그게 코끼리 묘지라는 거다.

 

 어린 나이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늙은 코끼리의 가족에 대한 배려와 현명함에 신선한 충격을 느꼈었다.



 고려장.

 슬프고 비참한 고려적 그 이야기.

 항간에는 고려장 이야기는 아예 있지도 않은 것을 일본 놈들이 한국인을 비하하기 위해 날조해낸 이야기라는 얘기도 있다마는,

 그 진위를 떠나서 진짜로 고려장이 있었기를 나는 기대한다.

 옛날에 고려장 이야기를 들을 때는 참으로 못된 이야기라고 느꼈다. 우리에게 효도라는 교훈을 주기 위한 거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식이 노부모를 내다버리다니! 비참하다기 보다는 참으로 못돼 먹은 이야기다.

 그때는 그랬는데,

 나중에 나는 코끼리 묘지라는 어릴 적 그 책이 생각났다.

 혹시 노부가 또는 노모가 기신거릴 근력이 없어 자식에게 짐이 될까 배려해 그렇게 스스로 산속 깊은 곳으로 떠난 것은 아닐까 하는...

 그 기력조차 없는 노인은 자식이 눈물을 머금고 지게에 져다 모시게 된 것일 것 같은...

 그러니까 내다버린 게 아니고 기력 없는 노인을 위해 자식이 모셔다 드린 게 아닐까.

 그걸 후세 사람들이 일부분만 크게 왜곡시켜 와전된 이야기를 전해 주었을 것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렇담 얼마나 사려 깊고 애틋하고 현명한 어른들이냐!

 나는 고려장 이야기가 그렇게 파생되었기를 바란다.




 장례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매장, 화장, 수장, 풍장, 훈장 등등.

 훈장(燻葬)은 시신에 연기를 쐬는 것이다. 즉 오래 보관할 필요가 있는 사람을 그렇게 장례 지낸 다음 길이길이 간직한다. 이런 경우는 아주 특수한 경우에 속한다.


 요즘은 화장을 권장하는 시세다. 매장으로 인해 국토가 좁아진다는 이유다.

 그런데 나는 모름지기 사람은 죽어 땅에 묻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화장을 해서 그 뼈는 결국 어디로 가는가. 강에 뿌리기도 하고 산에 뿌리기도 하고 그게 다 환경오염이 된다. 요즘처럼 납골당에 모시는 것도 마찬가지다. 차지하는 면적이 당장은 적으니까 매장보다야 폐해가 덜하긴 하다. 그치만 지금이야 그렇지 백 년 이백 년 시간이 흐르면 유골은 엄청 많아질 테고 납골당 또한 국토를 찔름거리며 갉아먹을 거다.


 차라리 매장을 하면 세월 흐르며 흙 속의 무수한 생명들의 양분이 되어 땅을 비옥하게 만들 수 있다. 바람처럼 땅에서 왔다가 이슬처럼 땅으로 흔적 없이 가 버리는 게 사람의 한 생일진대, 죽어 땅에 묻히면 바로 그렇게 가는 것이 아닌가. 딱딱한 납골당에 천년만년 갇혀 있은들 무슨 소용이냐.

 그래서 난 매장을 고집하려는 건데 문제는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묘에 대한 거다. 그런 묘지들은 시체는 썩어도 썩은 땅 위의 묘지는 천년만년 그대로 있을 테니 그것이 문제로다. 그래서 화장을 권장하기보단 매장을 권장하되 그런 사치 묘지를 제약하는 캠페인을 벌여야 옳을 듯싶다.


 그런데 낙태로 죽은 어린 생명들은 어떻게 처리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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