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그 집에 작은 무덤 하나 있다

설리숲 2007. 6. 9. 21:23

        

 그녀의 집에 작은 무덤이 하나 생겼다.

 옛날 중국의 황하,
 강을 따라 이동하던 병사들이 새끼 원숭이를 한 마리 잡았다. 그 어미는 애통한 심정으로 그 뒤를 따라 가다가 그만 죽어 버렸는데 창자가 끊어져 있었다.
 창자가 끊어지다.
 단장(斷腸)의 슬픔이란 말의 유래다.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박새 새끼가 죽었다고 한다. 그녀가 이사오기 전에부터 그 집 처마 안에 박새 한 쌍이 부지런히 드나들었었다. 우리가 집을 보수하고 청소하는 동안 새끼를 깠는지 하루종일 먹이를 물어다 나르던 거였는데,
 그날 아침 여느 때와 유난히 다르게 슬피 울더라고 한다. 겨우 털 몇 올 난 새끼가 땅에 떨어져 죽어 있더라고 한다. 묻어 주었다고 한다.

 나는 죽은 새끼보다 산 어미가 가련타고 했다. 얼마나 비통하고 슬플까. 단장의 아픔일지니.
 그러지 않아도 그날 나는 사뭇 마음이 무거워 있었다. 내 맏형님이 밤에 갑자기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직은 혼수에서 깨나지 못했다고 했다. 수술을 해도 절망적이라는 말과 함께. 고혈압을 지병으로 갖고 있었고 늘 머리가 무겁고 어지러워 크고 작은 병에 시달려 왔었다. 올 것이 왔다. 형님도 올해 이미 회갑의 연수이니 세월은 또 그렇게 한 사람의 병노(病老)를 관장할 만큼 흘렀나 보다.

 그날은 아침부터 음산한 대기에 비가 흩뿌렸다.
 무거운 심정으로 인간과 뭇 생명들의 생로병사의 고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세상에 나옴이 곧 고통의 시작이리니.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한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서 하는 일이 내겐 괴로움이요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이로다 (전도서 2:17) 그러므로 나는 살아 있는 산 자 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를 복되다 하였으며(전도서 4:2)



 새 무덤은 그녀의 집 마당 한귀퉁이에 있다. 나무십자가가 꽂혀 있고, 파란 나뭇잎이 세 장과 함께 온통 진분홍색 병꽃잎으로 덮여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호화로운 면도 있지만 그것도 다 그녀의 정성스런 마음씀이니 죽은 생명 부디 좋은 곳으로 천도되기를, 다음 생에서는 더 나은 존재로 나기를 나 또한 빌어 본다. 
 

 남은 것은 또 살아야 하는 것,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지닌 채 어미새는 또 연신 남은 새끼들을 위해 하루종일 먹이를 물고 드나든다.
 그래 너희들이 인간보다 낫구나. 적어도 내 새끼를 버리지는 않을 테니.

 그녀의 집에 작은 무덤 하나 있다.      2004. 5. 19

'서늘한 숲 > 햇빛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람이 불어오는 곳  (0) 2007.06.16
전라선 율촌 역  (0) 2007.06.13
파리는 다리가 몇 개지?  (0) 2007.06.07
그대 울고 있는가  (0) 2007.04.30
그녀의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0) 2007.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