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동행

설리숲 2006. 10. 11. 01:41

 

 아버지와 어머니를 영영 보내드렸다.

 아버지는 땅에 드신지 32년, 어머니는 9년이다. 참 오랜 세월을 홀로 계시더니 이젠 두 분 부둥켜안고 영면하시리라.


 아버지에 대한 정이 거의 없는지라 부모님 하면 나는 으례 어머니다. 9년 전 어머니의 임종에 나 혼자 있었다. 임종이라 하기엔 너무 속상한... 교통사고였다. 내가 운전하는 차의 뒷자리에 타셨다가 그만 생을 마감하신 것이다. 그러니 그걸 임종이라 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생을 마감하시는 그 순간 나는 깜박 정신을 잃었으니.

 그래도 그 자리에 내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어코 부각시키며 나는 스스로 위안을 삼는 것이다.


 두 분 화장을 해 드린다는 의견은 생각할 것도 없었다. 늘 가슴 무지근하게 여겨오던 거였다. 먼저 가신 아버지는 만천리에 산소가 있었다. 묘소의 지적(地積) 문제도 있었고, 땅 자체가 물기가 많아 아는 소리 하는 사람들로부터 늘 묘소가 좋지 않다는 소릴 들어왔었다.

 어머니는 생전에 늘 당신이 죽으면 절대 아부지 곁에 파묻지 말라고 하셨다. 아부지가 싫으시다는 거였다. 교통사고로 어머니 상을 당하자 갑작스레 묘소를 구할 수가 없었다. 어찌어찌 가까운 인척의 산지를 빌어 막무가내로 들이밀 수 있었다. 아버지 산소와는 아주 멀리 떨어진 전혀 다른 곳이었다.


 그랬는데 몇 년의 세월이 흐르자 산주인인 인척이 자꾸만 산소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가까운 인척이기에 여간 서운한 게 아니었다. 허나 언젠간 비워줘야 할 것이기에 두 분 다 화장을 하기로 했다.


 오전에 만천리 아버지를 먼저 팠다. 30년이 지났으니 육탈은 제대로 되었으나 짐작대로 땅속은 질척질척 물이 흐르는 자리였다. 얼마나 춥고 불편하셨을까.

 아버지 유골을 함에다 모시고 어머니가 계신 평촌리로 갔다. 돌아가신지 10년도 못 넘겼으니 다들 말을 안 해도 육탈이 제대로 되었을까 걱정이었다.

 아까처럼 스님의 집전하에 또다시 광명진언을 백팔 번 외었다. 광명진언은 멀리 떠나는 영가(靈駕)에게 밝은 빛과 영원한 안식을 주는 진언이다.

 

 

 

     광명진언(光明眞言)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 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르타야 훔.

 

 

 과연 어머니의 시신은 그대로였다. 문제다.

 원래는 말이 되기를, 고용한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화장까지 다 마치기로 했었다. 하지만 육탈은커녕 썩지도 않고 그대로인 시신을 화장할 수는 없어 그 즉시 화장터에 접수를 했다. 아버지는 고용된 사람들이 하고 어머니는 시립화장장으로 모시기로 한 것이다.

 부모님 두 분은 결코 함께 하지 못할 팔자인가 보다.


 싸구려 관이 운반돼 오고, 어렵게 어머니 시신을 관에다 모셨지만 화장장까지 갈 차량이 없다. 다행히 고물 화물차가 있긴 했지만 주인 되는 사람이 술에 잔뜩 취해 결국은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화장장으로 가게 되었다. 이미 해가 뉘엿거리는 저녁이었다.

 동행.

 화장장으로 운전해 가면서 나는 동행이란 말을 곱씹었다. 돌아가실 때도 나와 동행이더니 불구덩이로 가시는 길도 나와 동행이었다. 생전 막내인 나를 그렇게 애지중지하시더니.


 그리고 가루로 화한 어머니를 가슴에 안고 다시 평촌리로 돌아가면서 슬픔보다는 안도감, 허무함보다는 충만감이 가득했다. 눈치 보며 남의 땅에 빌붙어 계시느니 영원의 나라로 활활 날아 돌아가시는 게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인가.

 그보다는 동행.

 마지막까지 어머니와 단둘이 동행한다는 사실이 나는 너무나 행복했다.


 어스름이 내리는 산자락에 두 분의 골분을 같이 모셨다. 어느 잣나무 밑이었다. 결국 두 분은 같이 부둥켜안고 영원히 동행하시게 되었다. 이제 나는 절대로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

 

  

  

    광명진언(光明眞言)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 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르타야 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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