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사랑이 퇴색할 때

설리숲 2006. 9. 29. 23:23

 

 연애하던 남자를 차 버린 여자가 있었다.
 왜 헤어졌느냐는 친구들에게 그녀는 말했다.

 "저녁에 밥을 먹고 식당을 나오는데 말이지. 그 남자가 씩 웃는데 이빨 사이에 고춧가루가 꼈드라. 욱, 순간 을마나 혐오스럽고 정나미가 떨어지는지. 그래서 찢어지자 그랬지"

 그뒤 그녀는 다른 남자와 연애를 하더니 곧 결혼할 거라 했다. 그런데 친구들에게 애인을 소개 시켜 주는 자리에서, 이 남자 친구들에게 씩 웃어 보이는데 이빨 사이에 고춧가루가 보기 좋게(?) 끼여 있었다. 그러나 여자는 그런 것 조차도 사랑스럽다는 듯이 애인을 지긋이 바라보는 것이었다.



 내게도 이런 비슷한 경험이 있다.
 어느날 밤 집으로 찾아온 그녀. 그 입에서 물씬 풍기는 술냄새. 순간 속이 역해지면서 온 정이 다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첨엔 그런 게 다 매력이었다. 술 잘 못 먹는 나로선 어지간히 마실 줄 아는 그녀가 참 부럽기도 했고 내 몫까지 마셔 주는 그녀가 고맙기도 했다. 마셔 어서 마셔 자꾸 강권하기도 했으니까.
 그랬는데 사랑의 마음은 참 얄궂다. 마음이 멀어지면 나를 몸살나게 하던 매력까지도 흠이 돼 버리곤 하는 것이다.

 아니다. 인연이 아닌 거겠지.
 고춧가루 때문에 헤어진 남자는 인연이 아니었기 때문에 싫어졌을 것이다. 두 번째 남자는 인연이기에 고춧가루까지도 사랑스러운 거다.

 그런 걸까.
 그렇게 합리화한다고 해서 단지 술냄새 하나로 그녀를 역겨워한 내가 면피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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