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죽었다. 고등학교 1학년 가을이었다.
나랑은 별로 친하지 않은 그 아이가, 그래서 왜 죽었는지는 아직도 알지 못하는.
자살이었다. 자취방 안에 연탄을 들여놓고 가스를 마셨다.
하얗게 서리가 내리던 늦가을이었다.
을씨년스럽게 방문을 열면 보도블록 깔린 마당에 싸늘하게 덮여 있곤 하던 서리. 그 보다 더 싸늘하게 그 아이는 가 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공포스럽던 죽음이라는 것. 그 죽음의 추운 어둠 속으로 들어간 아이. 충격이었다. 한창 혈기방장한 그때 내 나이로서는 참말 엄청난 충격이었다. 세상은 온통 환희였고, 보랏빛 내일들이 무수히 우릴 기다리고 있음에 경이롭던 우리들에게 친구의 죽음이란.
아이의 책상엔 하얀 국화가 놓여졌고, 그리고 화염에 휩싸여 보이지 않는 무서운 세계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책상 위의 시든 국화다발도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충격과 공포도 어느덧 슬그머니 잦아들고 있었다. 열흘 쯤 뒤였다.
그때 너나없이 TV보다는 라디오를 즐기던 시절이었다. <별이 빛나는 밤에>
그때도 아주 인기 있던 라디오 프로였다.
일생을 통해 한낱 대중가요를 들으며 눈물을 흘려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난 그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문밖에 스럭스럭 밤나무 잎이 지고 있었다. 이따금 꿈결처럼 지나가는 자동차소리.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
유행이 한참이나 지난 구닥다리 노래에 난 울고 있었다.
“이 쓸쓸한 가을에 낙엽이 되어 먼곳으로 떠난 ○○에게 이 노래를 바칩니다”
우리 친구 중의 누군가가 저 세상 간 그 아이를 추모하며 엽서를 보낸 것이다.
세상은 얼마나 우울하고 서글픈 곳인가.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생애의 고독과 슬픔.
홀로 눈 덮인 벌판에 서 있는 외로운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세상은 절망과 고독 그것이었다.
문밖엔 스럭스럭 잎이 지고 있었다. 그 위에 늦가을 찬 서리가 내려 덮이고 있었다.
친구 아이의 죽음으로 해서 세상을 보는 눈을 달리했던 그 시절이었다. 아마 제 나이에 비해 숙성한 눈을 가진 계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도 바라건대 한낱 유행가에 도취해 실컷 눈물을 흘릴만한 감수성이 아직도 내 몸속에 남아 있기를.
하지만.
글쎄.
최백호 작사 최종혁 작곡 최백호 노래 :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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