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음악 이야기

사랑의 기쁨 또는 서운함

설리숲 2005. 10. 12. 23:03

 

 남삼한 검은머리, 검은 눈. 

 검은 뿔테 안경.
 이런 이지적인 외모에다 카랑카랑한 목소리.
 수많은 히트곡에 전 세계를 돌며 천상의 소리를 들려주던 여인.

 나나 무스쿠리(Nana Mouskouri)
 눈부시게 고독한 젊은 시절에 나는 그녀의 종이 돼도 좋다 할 정도로 그녀에게 빠졌었다.
 그녀의 노래는 음울하다. 고국 그리스의 지중해를 닮았을 것이다.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어둔 골방 구석에 앉아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세상은 온통 검은빛이다. 나는 그 우울과 고독으로 청춘을 보냈다.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사랑의 기쁨(Plaisir d'mour)이다. 

그녀가 한국에 왔다.
 처음이자 마지막 한국공연이란다.
 나 말고도 나나를 좋아하는 이는 전 세계에 부지기수로 많을 테니 이번 내한공연을 반기는 이들은 열광하겠지. 공연 입장권이 vip석 27만원이라 하니......

 청춘시절 그녀에게 빠져 있었던 나는 그러나 그다지 달갑지가 않다. 푸성귀처럼 싱그럽던 젊은 시절에 그녀는 한국을 몰랐었다. 어디 가서도 대환영을 받는 만큼 동양의 작은 나라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그  천상의 목소리로 수많은 사람들을 열광시킬 때 한국의 팬들은 변방 밖에 있었다.
 그런 그녀가 이제 한국 무대에 선다고 한다. 1934년 생이니 올해 71세. 변방 밖의 한국인들은 이제서야 그녀의 늙은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아무리 고운 목소리를 간직하고 있어 봐야 푸성귀처럼 싱그럽던 젊은날의 목소리는 정녕 아닐 터.
 좋게 생각하려 해도 늙고 힘들어지니 비로소 생색내듯 변방지역에 찾아오는 그녀가 섭섭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그녀를 미워하진 않는다. 다만 왜 좀더 일찍 찾아오지 않았는가 하는 서운함일 뿐.
 나나,
 당신이 있어 내 반생은 참으로 풍성했소.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랑의 슬픔만 영원히 남았네
    Plaisir d'amour ne dure qu'un moment
    Chagrin d'amour dure toute la vi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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