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고등학교 때 야구가 가장 인기 있었다. 특히 고교야구 전국대회 때는 매일 텔레비전에서 중계했고 라디오에서는 전경기를 중계했다. 모교팀도 아니고 고향팀도 아니어도 각자 좋아하는 팀들이 있었다.
그 황금시절에도 내 모교 춘천고는 야구의 변방에 있었다. 전국대회에 나가면 1라운드 통과하는 게 정말 힘겨웠다. 야구 절정기의 그 달콤함을 즐기지 못하고 그저 인기 있는 팀들의 들러리 노릇만 했다. 우리 학교뿐이 아니고 강원도 팀들은 그제나 이제나 같은 아픔을 겪어 왔다.
전국대회에 나가기 위해서 도예선을 치렀는데 우리는 오히려 이 예선경기가 더 치열하고 관심이 많았다. 어차피 전력이 약하니 전국대회에서는 성적을 기대하지 않았고 고마고마한 전력의 지역 팀들과의 경기가 더 중요했다. 라이벌의식이 엄청났다. 세계에서는 별 볼일 없는 한국축구가 같은 입장인 라이벌 일본과의 경기는 정말 피터지게 싸우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최대 라이벌인 강릉고와의 경기가 있는 날은 학교 분위기가 술렁거렸다. 물론 응원에 동원됐다. 입시를 앞둔 3학년은 놔놓고.
그때 부르는 응원가들은 대개 유행가였다. 그때가 80년대인데도 우리가 부르는 응원가는 70년대에 유행하던 노래였다. 응원을 주도하는 밴드부가 할 줄 아는 게 그런 거였다. 푸른시절, 짝사랑 등이 그거였다. 밴드부의 선배들이 연주하던 걸 그 새카만 후배들이 고대로 물려받아 레퍼토리가 그 지경이었다. 그건 좋다.
응원가 중에 ‘삼다도소식’이 있었다. 나원참.
삼다도라 제주에는 아가씨도 많은데~~
따라 부르는 놈들도 별로 없는 정말 오래된 노래를, 그것도 머나먼 제주도 노래를 응원가라고 불러대고 있으니 지금 생각해도 피식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이번 지리산 여행길에 제주도에서 온 아가씨와 잠시 동행을 했다. 전혀 없는 건 아니군.
바람과 돌과 여자가 많다고 해서 삼다도라 했으니 예전에는 짜장 그랬을 것이다. 나중에 건너가 본 바 뭍과는 사뭇 다른 이국적 풍경이 바로 돌이었다. 아하! 바람도 엄청 맞았으니 예전의 삼다도가 맞긴 맞는 모양인데,
내가 본 제주도에는 아가씨는 없었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 시절이 시절이라 섬에 묻혀 있을 리 없지. 해변에 이따금 숨비소리와 함께 물질을 하는 늙은 해녀들은 보이건만 그 옛날 섬에 넘실대던 제비처럼 싱싱한 비바리들은 이제 없다.
춘천고 야구부가 해체됐다.
오랜 전통만큼의 두각은 나타내지 못했지만 낙후된 강원 야구의 선봉으로서 많은 즐거움과 행복을 주던 팀이었다.
세월의 무상함이야 새삼 일러 무엇하랴. 시대에 맞지 않는 ‘삼다도소식’을 목청껏 부르며 젊음을 발산하던 대상이 사라졌다. 참으로 허무한 일이다. 삼다도소식은 추억 저편으로 멀어져 갔다.
삼다도의 비바리들이 사라졌고 세월은 옛 시절로 거슬러 오르지 못할 것이다. 잊히고 사라져 가는 것이 어디 이뿐이랴. 세월은 그 어느 것 하나 온전하게 남겨 두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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