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겨울 남한강을 다녀와서

설리숲 2006. 1. 20. 23:27

 시골 촌놈이 큰 도시로 나들이할 때의 두려움과 막막함.
 계곡 물을 따라 큰 강으로, 또 망망대해로 나갈 때의 낯설음과 역시 두려움.

 

 갈수기라 물의 양은 현저히 줄었지만 강언덕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남한강은 산골촌놈에게 경외와 두려움을 주기 충분했다.
 여행길을 떠날 때의 이런 두려움과 낯선 설렘이 나는 좋다. 가자, 가자. 되도록이면 집에서 멀리 가자. 낯설고 고독할수록 여행은 나그네에게 공포를 주며 그것은 그에게 세상 그 모든 것을 준다. 기쁨, 쾌락, 혼돈, 정열 그리고 청춘 또 진리.

 

 산골소년의 두려움처럼 동강을 따라 흐르다가 대하를 만나 그렇게 길을 걸었다. 혼자가 여럿이 모이니 대하처럼 긴 행렬이 되었다.
 1월에는 정기도보가 없는지라 예상보다 많은 - 떠남에 목마른 여행자들이 각지에서 이렇듯 모여 하나의 인연을 지은 것이다.

 참 다양한 모꼬지였다. 10대에서 50대까지 폭 넓은 연령층. 카페의 고참급 가족부터 가입한지 일주일도 안된 새내기까지. 더 못 걷는 게 아쉬운 프로 도보꾼에서부터 더는 못 걷는 물집꾼까지...
 차로 다닐 땐 막연히 "경치 좋네" 하던 것이 천천히 두발로 걸을 때의 느낌은 엄청나게 틀리다. 그런 것이다. 여행의 정수는 도보여행 아닌가.

 

 <추억만들기>란 테마를 간판으로 걸었지만 추억을 만들기보다는 옛 추억을 떠올린 여행이 된 것 같다. 민박집에 둘러앉아 즐긴 게임들. 실로 오랜만에 느껴 보는 엠티 분위기. 다만 다르다면 게임이 내겐 너무 어려워- 나뿐이 아니라 몇몇 노친네(?)들도 마찬가지였으리. 진행하는 코에이님 탐피님 화도 못내고 꽤나 답답했을 거다. 나이가 먹으니 대체 머리와 몸이 말을 들어야 말이지. 몽실님 말씀대로 내용보다는 설명하는 시간이 더 걸렸다는... 그렇지만 얼마만에 즐기는 흥성한 분위기던가.

 통유리 너머엔 기다란 남한강이 굽이져 휘돌아 가고, 하늘엔 보름달이 휘영청 올랐다. 주류(酒類)이든 비주류이든 그런 풍경 안에서야 어찌 흥청하고 즐겁지 않으리.

 

 고갯마루에서 단양읍과 고수대교를 내려다볼 때의 성취감도 좋았고, 읍으로 들어가기 전에 다리 앞에서 배 놓친 전쟁피난민들처럼 널브러져 앉았을 때의 노곤한 피로감도 좋았다. 도보여행이 아니면 느껴 보지 못하는 갖가지 감각과 상념들.
 그래서 나는 내일도 또 그 다음날도 길을 나설 것이다.

 

                                        2005.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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