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지겹게도 썼던 국군장병위문편지.
일말의 성의 없이 선생님이 하라니까 편지지 한 장만 겨우 채워 제출했던 기억들이 다들 있을 것이다.
내용은 거개가 다 똑같다.
여름이라면.
“무더움 속에서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겨울이라면,
“추위 속에서 얼마나 고생 많으십니까”
로 시작해서 용감한 국군아저씨 덕분에 우리들은 오늘도 공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저두 이담에 크면 씩씩한 국군이 되어서 북한괴뢰군을 무찌르겠습니다 뭐 어쩌구저쩌구...
의문이 생겼다. 전국의 초중고 학생들이 한 통씩 다 그렇게 보낸다면 진짜로 국군아저씨들한테 전달이 될지. 그리고 그 엄청난 양의 편지가 한 사람에게 몇 통씩 배분이 될지.
그러면서 속으로는 가소로웠다. 저렇게 천편일률로 똑같은 편지를 읽고 있는 장병들이 얼마나 재미없어 할까 하는...
그보다 진짜로 궁금했던 건,
그런데 왜 답장을 받는 사람이 없는 걸까. 고등학생까지 그렇게 수많은 편지를 보냈건만 나도 그 누구도 답장을 받았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 의문은 고등학교 때 학교교지를 만들기 위한 이웃 학교 여학생들과의 미팅 자리에서 풀렸다. 여자애들은 심심찮게 답장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때의 배신감이라니!
난 내가 여자가 아닌 수컷이라는 데에 기분이 상했다. 그러고 보니 내 누나도 전에 답장을 받았었고 또 누구누구도 그랬다 하고.
여자라서 누리는 편애에 얼마나 약이 올랐는지...
하긴 나부터도 사근사근하고 이쁜 여학생들의 편지가 중하지 저렇듯 성의 없는 사내놈들의 편지가 중할까 싶긴 했다. 내가 군바리라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으리. 서운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것임을 인정해야 했다.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다 감정마저 오고가서 연인이 되는 사례도 많았다 한다. 난 도시락 들고 출퇴근했던 사람이라 군대이야기를 알 리 없지만 내 형의 얘기론 그랬다.
형이 전역할 때 가지고 온 소지품에는 여학생들과 주고받은 편지가 상당히 많았다. 그 중에 한 여학생과 가깝게 사귀고 있다고 했다. 은광여고 연대장(학도호국단 시절이라 전교학생회장을 군대식으로 연대장이라 했다)인 학생이었다.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와, 어떻게 은광여고 연대장이랑 사귀냐 대단한데.
전역 후 한동안 두 사람의 편지는 계속 왕래하더니 어느 날 형이 힘없는 표정으로 그런다. 그 여학생이 형을 만나러 춘천엘 온다 했다고. 기뻐 날뛰어야 할 형의 얼굴에 근심이 서린 것은 뻔하다. 눈에 안 보이는 편지라고 얼마나 뻥을 쳐댔을까. 큭큭
그 이후의 일은 잘 모르겠다. 기억도 안 난다. 은광여고 연대장이 춘천엘 왔는지 어쨌는지, 왔다면 우리 집에도 왔는지 어쨌는지.
그러나 아무튼 그 여학생의 그 후 소식을 모르니 야무지게 깨졌다는 건 분명하다. 큭큭.
흔히 여자들이 곰신 거꾸로 신는다 하지만, 위 사례로 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을 거다. 애인을 두고 입대한 녀석들도 저렇듯 여학생들의 수많은 편지를 받다 보면 슬슬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으니 큭큭.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지금도 학교서 강제로 위문편지를 쓰게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