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바람부는 날 주접떨기

설리숲 2005. 11. 21. 23:20

 

 고등학교 때다.
 학교 변소에 LP가스통만한 플라스틱 용기가 아주 많이 놓여졌다. 오줌을 거기다 누라는 거였다. 화장품회사에서 갖다 놓은 것이었다. 남자오줌을 받아다가 화장품을 만든다고 했다.
 의문이 생겼다. 왜 남자오줌일까 여자는 안되고?
 나는 아마 이것도 음양의 조화를 따지는 건가 보다 심오하게 앞질러 생각했는데.

 

 애들의 물음에 선생님의 답은 이랬다.
 "남자라야지 여자들은 거기다 제대로 못 눠. 옆으로 흘리는 게 더 많아서……"
 아아 그렇구나. 모두들 끄덕끄덕 키득키득 낄낄낄.

 

 그리고 이어진 선생님의 뒷말,
 "그리구 여자들은 오줌이 지저분해서 못써"
 와하하 교실은 뒤집어지고 말았다.
 아이구 선생님, 여자분이시면서 어떻게…… 그래서 저희들은 선생님을 좋아한답니다.

 

 그로부터 한동안은 지나가는 여자들의 얼굴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혹 내 오줌이 발라져 있을지도 모를 일. 그 기분 참 묘했다.
 뭐 상대방 여자들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저한테 관심있는 걸로 착각했을지도 몰라.

 

 자연생태계의 많은 짐승 수컷들이 오줌을 싸서 제 영역을 표시한다고 하니.
 여자들이여!
 혹 어떤 남자가 당신을 유심히 쳐다보거나 자꾸 치근덕대더라도 너무 불쾌해 하거나 섣불리 치한으로 몰아세우지 말지어다. 제가 표시해 두었던 영역을 확인하는 작업일지도 모르니까.

 

 아, 나도 저자에 나가 내 영역 좀 돌아봐야 할까부다.
 가을이 되니 옆구리가 허전해서 원.

 

 그래서 나온 저자거리, 소슬바람이 분다.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으로 가라고? 난 읍내로 간다.
 뭐 숲으로 가야 제격이지만 거긴 너무 깊고 고요하다. 쓸쓸해서 견디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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