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눈물

설리숲 2005. 5. 24. 20:01

 

 11월 18일
 눈물을 흘린다. 여행하면서 난생 처음이다.
 목포발 부산행 열차에 올랐다.
 창밖의 풍경은 늦가을의 허허로운 벌판. 슬며시 되지도 않은 개똥철학이 머리 속으로 들어온다.
 산다는 게 뭘까. 존재하는 것은. 부질없다. 까닭없이 모든 게 허무하다는 생각이 가슴을 비집는다.

 장자를 생각한다.
 삶은 한갓 꿈에 지나지 않은가. 인생을 살다가 꾸는 꿈, 그 꿈이 끝나는 곳에 죽음이 있다.
 우리 인간들은 그 죽음이 끝이라고 믿고는 억울해 하고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생각해 보자.
 우리가 어느날 꿈을 꾸었다. 달콤한 꿈이다. 그럼 꿈에서 깨기 싫다. 오래도록 달콤하고 싶다.
 반대로 무서운 악몽을 꾼다. 어서 깨고 싶다. 식은땀을 흘리며 버르적대다가 잠을 깨면 후유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게 인생이다.

 인생 칠십이라 한다면 그 시간을 우리는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삶이 행복한 사람은 죽고 싶지 않을 게고, 삶이 무겁고 고통스러운 사람은 오래 살고 싶지 않을 게다.
 다 꿈이다.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음을.
 우리네 인생이 그와 같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왜 그토록 권력, 출세, 금전을 탐하며 욕되게 살고자 하는지.
 소풍 와서 즐겁게 놀다가 그렇게 가면 그만인 걸.

 차창 밖 텅빈 가을 들판을 바라보며 이런 상념들로 나는 그만 울컥 눈물을 흘린 것이다.
 그러면서 인연이라는 걸 생각했다.
 무수한 사람들 가운데 만나서 사랑하고 연을 맺는다는 건 정말 엄청난 거다. 실로 몇 억겁의 인연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 아이가 태어나 또다른 인연을 만든다는 것.
 그런 인연은 굳이 만들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그냥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영겁의 인연들로 만나서는 사랑하지 못하고 시기 질투 증오 폭력에다 이별은 또 뭐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나온 날들에서 내가 만났던 사람 또 스치고 지나간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중에 정말 좋은 인연이 있었을까. 뜻하지 않은 곳에서 다시 만나지려나.
 그러면서 다시 눈물이 흐른다. 도대체 허무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기차에서 내려 다시 돌아가고픈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무엇을 찾아 가려고 이 기차를 탔는가. 어디에나 두발 내리면 그곳이 내 살 곳이거늘 난 지금 어디로 가는 건가.
 가슴이 몹시 답답해 다시 울었다.

 

   2001.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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