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나 죽으면 너 울어 줄거니?"
여행을 떠나면서 내가 그렇게 물었을 때 전화선 너머 그는 잠시 침묵했다. 당혹스러웠으리라. 물어본 내가 잘못이다. 우리가 무슨 연인이기라도 한 건가.
어떻게 답해야 할지 오만가지 생각이 무수히 드나드는 게 전화선을 통해서 내게 전달된다.
이윽고 그가 대답한다.
"응"
내가 안도한다. 어쩌면 그 대답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가. 내가 그에게 그런 존재가 돼 있는 건가.
나는 그를 좋아한다. 사랑까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아주 가까운 여자다. 그는? 아마 그도 그럴 것이다.
그가 "아니"라고 대답했으면 물론 섭섭할 것이다. 그러나 내 가슴 더 깊은 곳에 묵직한 무엇이 자리잡고 들어앉는다.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자. 모든 괴로움의 시초는 戀情이고 그리움이라 했던가. 내가 이 산속을 찾아 들어온 것도 다 그런 연유이거늘, 마흔이 넘은 이 나이에 때늦은 연정이 다 무엇이며 왜 슬픔의 불씨를 담으려 하는가.
사람과 사람이 이별할 때는 슬픔과 고통이 없어야 한다. 그러자면 연정과 그리움의 싹을 애초 키워서는 안 된다.
그런데 내가 죽으면 그는 울어 준다고 한다. 무겁다. 또 하나의 업장이 어깨 위에 쌓였다.
다가가지 말자.
멀어지자.
아니다,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만 보자.
연정이 생기지 않게 하자. 이미 생긴 연정은 그것대로 두고 그냥 바라만 보자. 필요하면 차가워지자. 필요 이상으로 냉정한 것도 나쁘진 않다.
어느날 나의 죽음에 그리하여 그가 우는 일이 없기를……
늘 길 위로 나서는 내게는 그래서 항상 죽음도 저만치서 따라다닌다. 그것은 언제고 기회만 보이면 내 곁에 바싹 다가들 것이다. 나도 그 누구도 모른다. 그날이 언제인가는. 분명한 건 나는 길 위에서 죽을 거라는 것.
언제고 나 다시 한번 그에게 물으리라.
"나 죽으면 너 울어 줄거니?"
그때는 제발 이렇게 대답해 주렴.
아니.
내가 왜 울어, 그거 말고도 울 일이 얼마나 많은데.
2004.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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