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웃에 한 노옹이 계신다. 나는 그 분을 삼촌이라 부르는데 삼촌은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신다. 웬 선생님? 아무것도 가르친 게 없는데. 그래 처음엔 선생님이라 그러지 말고 홍림아, 하고 부르시라고 여러 번 일러 드렸는데 그래도 끝까지 선생님이었다.
한데 선생님이라는 그 호칭이 근래 바뀌었다. 도사님. 나더러 도사님이란다 헐! 올봄부터 여름을 지나는 동안 이곳저곳 돌아댕기느라 집을 거의 비우다시피 했는데 내가 무슨 道라도 닦으러 다닌 줄로 아시는 건가. 하긴 머리를 싹둑 삭발하고 왔으니 어쩌면 승데기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도사님이라...... 그건 괜찮은데 다른 사람이 있을 때도 그렇게 부르시니 민망해 죽겠다. 혹 어떤 이가 곡해해서 진짜로 '참된 道'를 물으러 올라올지도 모를 일. 나원 참. 이건 내 얘기고
다음엔 별곡. 그녀는 인근 사람들에게 무꾸리, 즉 점보는 여자 내지는 무당으로 알려져 있는 모양이다. 오래 비워둔 집에 젊은 여자 하나 들어와 살지, 시시때때로 종소리가 나지(요건 풍경소리), 가끔 들여다보면 사람은 없지, 마당엔 풀만 무성하지, 그 요요한 분위기를 본다면 왜 안 그렇겠는가. 이사와서 그녀는 에나멜 페인트를 사다가 외벽 기둥에다 색칠을 했는데 붉은색, 노란색, 푸른색으로 울긋불긋 칠해 놓으니 영락없는 무꾸리 집이었다. 나도 처음에 그 집 마당에 들어서다가 그 요기 서린 듯한 분위기에 섬찟했었다. 입 밖으로 말은 안했지만 정말 그건 아니었다. 다행히 나중에 붉은 색은 지웠으니 지금은 그런 대로 봐줄만 하지만 말이다.
이 정도 기본 틀이 갖춰져 있으니 그 집 또한 문복하러 오는 손님이 있을 법하다. 잘만 하면 돈벌이도 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그러면 나도 거기 빌붙어 고추박이 또는 기대 노릇이나 하며 빈둥거리고 놀고 먹어도... 한데 사람은 젬병이니.... 어쩌다 내가 놀려먹으려고 거짓말 한번 해도 곧이곧대로 믿어 버리는 사람이니(모른 척 속아주는 건지도 모르지만) 이래서야 어디 남의 속 훔쳐보기는커녕 어설픈 무꾸리 흉내나 낼까.
그래도 조금 공부해가꼬 우리 한번 동업해볼까. 인사동에서 그럴듯한 옷 좀 사다 걸치고, 나는 주역 구절이나 몇 개 주절거리고, 별곡은 신령님 그림이나 그리면서 폼잡고 앉아 있어 볼까. 세상이 어려우면 이쪽 업계가 호황이라 하니 우리 한번 근사하게 사기 좀 쳐볼까.
오래 처박아 놨던 목탁을 이젠 좀 꺼내서 닦아놔야겠다.
옴 자레주레 준제 사바하 부림 - 천수경
2004. 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