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거리의 악사들에게 박수를

설리숲 2008. 5. 6. 11:40

 

 다른 건 다 그저 그런데 노래 잘하는 사람이 부럽다. 나두 머 그리 음치는 아니지만서두 썩 잘하는 편은 아니니까. 어쩌다 노래방엘 가면 정말 노래 잘 하는 사람이 있어 기가 막힐 정도야. 헌데 그런 사람도 진짜 가수에 대면 별거 아니라는. 그래 가수란 참으로 하늘에서 복을 받고 난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날 우린 진짜 노래를 들었던 거야.

 여름밤이었지. 지금은 추억이 된.

 가을이 코앞에 다가온 그 쯤이었을 거야.

 

 가평 어드메 자연휴양림엘 갔어.

 텐트를 쳤어. 그 전날 밤에 비가 오고 나서는 하루종일 꾸물대면서 미친년 오줌 싸드끼 종잡을 수 없는 날씨였어. 어둠이 내릴 무렵엔 또다시 비가 듣기 시작해.

 여기저기 이웃 데크에 텐트가 하나둘씩 들어서고.

 웬 범상치 않은 사내가 하나 기타를 들러메고 나타났어. 기타가 아니라도 생김부터가 예술가 같은 분위기가 풍기는 게 왠지 끌리는 매력 있더군.

 참내 저 사람도 못 말리는 팔잔가 보아.

 기타 메고 천하주유하는 사람인갑다. 자유롭긴 하겠지만 신세가 영 그렇네...

 그녀와 나는 속닥대며 흉 아닌 흉을 보았더랬지.

 

 밤이 깊어지자 드뎌 비가 쏟아져.

 한가로운 저녁 한때를 즐기던 가족들이 죄다 짐을 챙겨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어.

 그리고 그 사내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거야.

 하! 고 황홀한 기타의 울림.

 숲속이라 그런가, 빗속에서의 리듬이라 더 흐느끼는 건지. 정말 기가 막히다라는 표현 밖에 달리...

 게다가 그 음성은 어떻구. 맑고 낭랑한 남자의 목소리. 내가 여자였다면 무심결에 다가가고 말 그런 유혹.

 밤은 깊어 가고 이웃 텐트 속에서도 다들 심취했는지 숲속은 고요하고 빗소리와 기타소리 사내의 노래가 우주 삼라만상을 가득 채워.

 간단없이 이어지는 레퍼토리. 무슨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하나도 기억은 안나. 그저 감탄하면서 우린 누워 있었지.

 사실 그냥 누워만 있지는 않았어. 손이 몇 번 왔다갔다하고 나서,

 그 천상의 노래를 들으면서 우린 사랑을 나눴어. 세상에 그런 근사한 정사를 상상할 수 있겠니.

  그 풍광에 분위기에,

 그리고 비...

 비가 내리길 천행이지 뭐야. 텐트를 때리는 빗소리 덕에 이웃의 아무도 우리의 교성을 듣지 못했으니 낄낄...

 한데 이상하게도 그 사내의 노랫소리는 바로 귓가인듯 명징하게 들리더라.

 에로틱한 카타르시스에 빠져 언제 노래가 끝났는지도 모른 채 우리는 나른한 잠에 빠져들었지.

 

 

 상쾌한 숲.

 이튿날 느지막히 눈을 뜨니 비에 젖은 숲은 태고의 모습인듯 싱그럽고 신비하고,

 굉장한 숲이었어. 

 아침을 해 먹고 둘이 손잡고 산책을 나서다가 아하, 그 사내를 봤어. 떠나려는지 짐을 꾸리고 있더군. 반가워서 인사치레로 건넸지. 어젯밤 노래 잘 들었노라고. 그쪽은 어색한 미소로 가벼운 목례를 보여.

 

 산책을 돌고 들어와서 난 또 오카리나를 꺼내 물었어. 길 떠나면 늘 동행하는 내 분신 같은 거야.

 레퍼토리는 역시 기억나지 않아. 몇 곡 불어 제꼈던 거 같어.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건너와. 흠 기분 괜찮군.

 아저씨 하나가 찾아와 그게 뭐냐고 , 구경하더니 한 곡만 더 부탁한다고 제 패거리로 돌아가.

 그러지머. 삘 받은 김에 한번 더.

 이건 기억이 나. <사랑의 기쁨>을 연주했어. 박수갈채.

 아주머니 하나가 접시에다 과일과 과자를 담아 들이밀고 가네. 잘 들었노라고.

 이것 보게! 먹을 게 생기네.

 아하, 예술가의 희락은 이런 게 있었군. 뭔가 한가지 재주만 있으면 평생 굶지는 않는다 하더니.

 

 아차,

 그제야 뒤미쳐 깨달아진 것!

 그렇게 황홀한 노래와 연주를 듣고도, 그것을 배경으로 고감도 오르가슴을 즐기고서도 그 예술가 사내에게 보답하나 할 생각을 못했다. 하다못해 아주머니처럼 과일이라도 몇 개 건네줄 생각은 왜 못 했을까.

 난 그런 내가 싫어. 꼭 나중 지난 다음에야 생각이 미치니 말야.

 호세 카레라스 공연엔 몇 십만원도 아까워 안하고 잘들 가며서도 그보다 못할 게 없는 거리의 악사들에겐 우리 너무 인색한 것 같어.

 그때 결심했어.

 어느 길거리에서 노래하는 사람 있으면 발을 멈추고 꼭 한 곡 이상은 듣고 가리라.

 그리고 다문 천 원짜리 한 장이라도 놓고 가겠다는.

 

 뭐 그것도 주머니 사정이 허락해야지만서두

 아무튼 심정이 그래.

 꼭 그래야겠어.

 

 나두 노래 좀 잘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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