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노동절 아침에

설리숲 2008. 5. 1. 09:30

 송순, 정철 등 국어시간에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문학가들.

 행세 깨나 하고 후세에 이름이 남은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그들은 문학가이기 전에 정치인들이다.

 조선시대가 그렇다.

 

 가사문학의 최고봉이라는 그들은 사생활도 풍류일색이었다.  경치 좋은 곳에 정자, 누각 따위 지어 놓고 시를 읊고 친우를 불러 한담을 즐겼다. 도화 뜬 맑은 물에 잔가지 세어 가며 흥취했고, 거기서 우리가 지겹게 암기했던 주옥같은 문학들이 나왔다.

 

 그 자리엔 또 기생 등 여인들도 합석해 흥을 돋웠다. 민화를 보면 양반들의 풍류놀이에 어김없이 여인들이 있다.

 얼마나 멋진 인생이냐. 저렇게만 살다가 죽을 수만 있다면...

 

 그들은 손가락 움직여 일을 해 본 적이 없다. 대대로 세습되는 사대가문의 후예로 날 때부터 그렇게 살게 되어 있는 신분들이었다.

 그들이 정자에서 합죽선 팔랑이며 고량진미와 함께 詩歌를 즐길 때 그 음식과 음청을 날라다 바치며 시중을 드는 자들은 누군던가.

 하루 진종일 주인을 위해 개처럼 노동을 해야 했던 고달픈 인생 그들은.

 풍류남아들이 먹고 마시는 곡물들을 실제 거둔 건 누구의 손이었나.

 한 해 뼛골이 달창나도록 고된 노동을 했던, 그러나 정작 양민 자신들은 늘 굶주렸다.

 

 담양 소쇄원은 정자문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멋스럽게 지은 정자 밑으로는 청류가 흐르고 대숲에서는 청아한 바람 쏟아져 나온다.

 그것은 하층민들의 피의 흐름이요 굶어 죽어가는 어린아이의 신음소리가 아닐까.

 관광객들은 그 멋드러진 풍취에 매료되어 그들을 경배하고 숭상하지만, 또 그들의 문학에 경탄도 하지만...

 

 

 조선시대 뿐이더냐.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재도 그것은 진행형이다.

 알량한 최저임금으로 생색 내면서 하층민들의 노동력으로 저들은 엄청난 부를 누리고 있다.

 이 신분차이는 엄청난 것이어서 정말,

 정말 극복하기 어려운 카스트다.

 

 저들의 밥그릇 챙기기에 왜 노동자 당신들이 흥분하고 안달하는가. 왜 맹문도 모르면서 부화뇌동하냐 말이다. 배알도 없는가.

 입버릇처럼 가족 가족 하니까 정말로 저들과 가족이라도 된 걸로 아는가.

 입으로는 가족이라 말하지만 결국 사업장 내에선 기업주와 노동자의 주종관계이고

 작업장 밖에서, 어디서 어떤 형태로 만나도 - 뭐 한자리에 함께 있을 일도 없겠지만 - 저들은 상류층 사람이고 당신들은 그저 맨 밑바닥 노동자일 뿐이다. 저들은 결코 당신들을 인간 대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암, 엄연히 신분이 다른데.

 하물며 가족이라니 그 얼마나 경박하고 가소로운 사탕발림이냐.

 바라건대 아무리 힘없고 돈없는 하층인생이지만 제발 배알은 지니고 다녔으면 좋겠다. 저들은 가족이 아니다. 저들의 밥그릇 싸움의 결과는 당신들과 전혀 무관하다.

 

 당신들의 노동력을 최대로 취하여 막대한 부를 누리면서 당신들에겐 최저생계비만 주지 않느냐.

 정부에서 강제로 못 박아 놓으니 마지못해 주는... 그나마 이 최저임금제가 없다면 저들은 그에도 훨씬 못 미치는 돈을 하사할 것이고 노동자들은 그래도 감지덕지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을 것이다.

 신 정자문화시대다.

 오늘은 노동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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