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경춘선 화랑대 역

설리숲 2008. 6. 6. 19:44

 

 기차를 처음 타 본 게 중학2년 때다.

 춘천에 10년 가까이 살고 있었으니 그리 시골뜨기도 아니고,

 경춘선 열차는 무시로 드나들어 학교 교실에서 이따금 남춘천 역으로 가는 기차를 창너머로 보기도 했건만 아무튼 직접 탈 기회는 없었다.

 

 듣기로 기차는 버스와 달라서 흔들림이 없이 편안하다 했고

 그 안에 변소도 있다 했으며

 먹을거리도 판다고 했다.

 도저히 상상이 안 되었다. 차 안에 어찌 변소가 있고 어떻게 가게가 있을 수 있단 말이고...

 

 진짜였다.

 변소도 있고 내가 생각한 가게는 아니어도 홍익회 아저씨가 먹을거리를 가지고 돌아댕기는 거였다 우와!

 근데 차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건 뻥튀기였다. 그럼 그렇지 차가 어찌 안 흔들리누.

 난 울위를 미끄러지듯 그렇게 차가 가는 걸로 상상했던 거다.

 

 그때가 여름.

 하얀 여름교복이 들러붙을  정도로 무더운 날, 열어 놓은 차창으로 억세게 들어오는 바람이 참으로 기분 좋았다. 달려가는 창밖 풍광들, 논이 있고 밭이 있고, 때이른 해바라기가 두엇 씩 서 있고...

 민가마을 다리를 건널 때는 그 아래로 고기잡이하는 아이들이 있고, 철로변 띠밭에 옥수수가 빨간수염을 늘이고 서 있는 풍광들.

 기차는 정말 멋진 차였다.

 

 

 그 이후로 명절 때면 사뭇 경춘선 열차를 타고 드나들었다. 늘 어머니를 모시고 갔다. 어머니는 버스는 어지러워 싫다 했다.

 집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춘천 역으로 가서 드문드문 있는 보통열차를 기다려 타고 성북에서 내린다. 성북에서 전철을 타고 청량리까지, 거시서 다시 수원행 전철을 타고는 수원에서는 또 버스로 오산을 갔다. 참말 지루하고 짜증나는 먼 여행이었다.

 어머니는 굳이 보통열차만 고집했다.

 경춘선은 보통열차와 특급열차가 있었는데 특급은 강촌이나 가평 대성리 등 제법 인총이 번다한 큰 역만 정거했다. 보통은 역이란 역은 죄다 섰기 때문에 성북까지 가는 시간이 엄청 멀고 지리했다.

 특급은 지정좌석이 있었지만 보통열차는 없었다. 그냥 먼저 차지하고 앉는 사람이 임자였다. 개찰구에서 검표를 하자 마자 들입다 뛰는 게 보통열차의 일상 풍경이었다. 우리는 어머니가 노인네라 먼저 뛰어거서 자리를 차지하는 게 쉽지가 않았다. 승객이 많지 않으면 다행히 여유있게 앉아 갔으나 그렇지 않으면 늘 뒤처질 수 밖에 없었다. 나라도 먼저 뛰어올라 두 자리를 맡아 놓으면 좋으련만 다른 사람들 뛰는 모습이 내 눈엔 몹시 천박해 보였고 난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자리가 없으면 착한 젊은이들 중의 누군가는 어머니에게 자리를 내어주곤 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괜찮았지만 난 허구허날 서서 가기 일쑤였다.

 

 이렇게 멀고 지루한 보통열차를 어머니가 고집하는 이유눈 하나, 삯이 쌌기 때문이다.

 난 늘 불만이었다. 좀더 편하게 갈 수 있는 걸 공연히 어머니 때문에, 하는 서운함.

 그까짓 거 얼마나 아낀다고 이렇게 힘들게 가나.

 그래도 내색은 한번도 안 했던 것 같다. 그럴 보면 난 역시 효자였다고 자화자찬한다.

 

 

 그러루해서 알 게 된 게 화랑대 역이었다.

 모든 게 군대 위주였고 대통령 중심이었다.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를 지나면서 가장 부각된 게 아마 육군사관학교일 것이다. 시시때때로 KBS는 삼사 소식을 전했고, 삼사 졸업식을 중계했다. 그들만의 잔치인 삼사체육대회를 매년 생중게로 전국에 보여줬다. 육사 해사 공사 생도는 더없이 존엄한 존재였다. 머리가 좋고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기고 모든 것 빠지지 않는 이 나라의 가장 보배로운 인재들 집단이었다.

 그런고로 '화랑대'라는 역 이름은 어린 내게 고귀하고 근엄한 이미지로 다가왔었다. 버젓이 '화랑대 역'이라는 이름을 갖춘 육군사관하교는 그만큼 높은 대상물이었다.

 군사정권의 암물한 자화상이었다. 어린 학생을 그릇되게 인도해주는 비틀린 세상이었다.

 

 제일 더럽고 비리가 심한 데가 군(軍)이라 한다. 그 잘 생기고 멋진 엘리트들, 내 누이들의 로망이며 보통 학생들의 선망이던 그 잘생기고 유망한 청년들이 종내는 가장 비루하고 비열한 집단의 중심인물들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 질곡의 사연과 함께 수없이 화랑대 역을 지나다녔다. 내리는 이나 타는 이가 별로 없는.

 

 

 

           

 

 오랜만에 화랑대 역을 찾았다.

 그 이후로 내겐 차가 생겼고 굳이 자리 차지하려고 뜀박질해야하는, 멀고 먼 짜증나는 보통열차를 타지 않아도 되었다. 삶은 이렇듯 조금씩 조금씩 더 나은 생활로 가는 여정인가 보다.

 지금 되돌아보면 지기용보다는 기차여행이 낭만이 있어 좋고, 기차여행도 KTX보다는 무궁화가,무궁화보다는 지금은 없어진 특급열차가, 특급보다는 지리하고 짜증나던 보통열차가 진상임을 깨닫곤 하지만.

 정권도 바뀌고 화랑대의 위상도 그럭저럭 제자리를 잡았다. 서슬퍼런 권위도 없어져 이젠 일반인에게고 학교를 개방하고 있다.

 여전히 육사는 역 앞에 육중하게 자리하고 있지만 세상은 그때의 세상이 아님을 알겠다.

 

 

 

화랑대 역에는 상해 4편, 하행 3편이 정거한다. 세월은 많이 흘러도 여전히 역으로서의 역할은 하고 있으니 적으나마 찐덥기는 하다.

 

       

    옛 조촐한 역사는 없고 새로 지은 건물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 늘 그렇지만 새것이라고 능사는 아니다.

    꼭 SK주유소 같은 게 영 시덥지가 않다. 하긴 내 맘에 들라고 지은 건 아니겠지만.

 

이 일대의 녹음이 좋다. 녹지대로서 도시의 허파 역할을 할만 하다. 플타타너스가 주를 이룬 무성한 가로수길이 일품이다. 도보여행자들이 걸어보고 싶은 길로 꼽히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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