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 거리에서 장례행렬을 만났다.
기온이 무척 쌀쌀하다.
관을 따르는 사람들의 입에서 하얀 김이 나온다. 흑흑 흐느끼는 소리가 자냥하게 들린다. 이미 눈물도 말라 버리고 피곤한 모습들이다. 슬프지만 기력이 다해 울음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저 흑흑 형식적으로 내는 것 같다.
겨울 아침의 장례행렬은 유난히 쓸쓸하고 처량해 보인다.
도보여행 둘째 날이다.
장례행렬과 방향이 같아 잠시 그들과 동행한다.
화장하고 머리를 자르고 멋진 여자로 태어날 거야.
자꾸만 입속에서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늘 그렇다. 아침에 들었던 노래는 하루종일 흥얼거려지는 것이다.
왜 하필 '여성시대'를 그 아침에 듣게 됐는지 유족들의 미어지는 슬픔과 동행하면서 나는 사뭇 그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고 보면 노랫말과 유족의 심정이 전혀 틀리지만은 않다고 굳이 합리화 시킨다.
사연이야 어떻든 죽은 자는 이제 세상에 없으며 남은 자들은 곧 그를 잊을 것이다. 슬픔을 넘고 다시 자신들의 생활로 돌아갈 것이다. 오래 슬퍼할 이유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사람들은 꿋꿋하게 자신에게 남은 삶을 다시 이어가겠지.
화장하고 머리를 자르고 멋진 여자로 다시 나겟다는 노랫말처럼...
나는 화장이 죽은 사람을 태워 없애는 그 화장인 것 같아 쓴 미소를 짓는다. 죽은 남편을 화장하고 자신은 머ㅣ를 자르고 멋진 여자로... 립스틱 짙게 바르고 내일이면 그를 잊겠다는 것과 상통한다.
처음 진도에 들어오던 날, 진도대교를 건너자마자 맞닥뜨린 것은 코스모스와 해바라기였다.
이 겨울에 만발한 코스모스라니.
그렇지만 그것도 약과였다. 장례행렬과 헤어지고 운림산방으로 가는 그 길에서 활짝 만개한 개나리를 보았다.
그러고 보면 진도는 봄여름갈겨울 사계절이 공존하는 독특한 지방이다.
진도...
토속적이면서도 이국적인 풍광이 어우러진 곳.
나는 그곳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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