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서야 감이 워낙 귀한 거라서 무슨 혼례나 잔치 때,
또는 제사 명절 때나 감질나게 먹었지.
그것도 생감은 구경도 못하고 말린 곶감이 그거였다.
대나무나 싸릿가지 꼬챙이에 꿴 예쁘게 성형한 그 곶감.
귀해서 그랬는지 아이녀석들 입엔 착착 감기었다.
난 어쩐지 곶감이 그리 맛있지는 않았다.
커서 여러 곳을 여행 다니다보니 남쪽지방의 곶감은 그동안 봐 왔던 곶감과 생김새가 달랐다. 생감을 그대로 말려서 자연 그대로 생겨먹은 게 영 성의가 없어보였다. 예쁘게 모양을 내서 꼬챙이에 열 개씩 꿴 곶감이 아니더란 말이다.
어쨌든 어른이 돼서도 일부러 곶감을 사 먹을 만큼 좋아하지 않아서 투박한 남녘의 곶감은 먹어 보질 않았다.
그러께 정찬석 씨가 갖다 주신 상품이 안된 지스러기 곶감을 먹어보고는 확! 관념이 바뀌고 말았다. 이제껏 내가 먹어 온 곶감은 곶감이 아니었다. 참으로 맛난 곶감이었다. 아하, 호랑이가 곶감을 무서워하는 걸 그제야 깨단하겠더라. 그것도 상품이 아닌 지스러기 곶감이 그 정도였으니. 그럼 내가 먹어왔던 그 곶감들은 짝퉁이었을까 값이 싼 저질 곶감이었을까.
흠, 그래서 사람은 여기저기 다니면서 견문을 넓혀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난 여전히 제사 때 먹던 그게 곶감의 전부인 줄만 알고 말았겠다.
그러루해서 난 덕산 곶감이 전국 제일인 걸 인정한다. 아마 그래서 값도 젤루 비싼 줄 안다.
올가을엔 감에 파묻혔다. 지긋지긋한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더 이상 감에 궁박하진 않을 만큼 온통 감, 감이었다. 원래 흔하면 가치가 떨어지니까. 매일 보느니 감이요 먹는 게 감이었다.
덕산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는데 초다짐거리로 깜똘개가 나왔네. 에구 지겨운 놈의 감을 거기서도 먹으라고 내놓다니.
가을 산기슭은 등불을 켜 놓은 것 같다. 나무마다 오달지게 달린 감들. 깎아 매단 곶감막도 일제히 불을 킨 것 같다. 아름다운 저녁이다.
가을은 저물고 깊은 겨울로 들어가고 있다. 어느 집 곶감막에서건 감은 마르고 영글어 금쪽같은 먹을거리로 업그레이드되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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