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읍에 내려 차부 바로 옆 미용실엘 들른다. 차일피일 미루던 머리를 오늘은 기필코 자르리라.
무료한 저녁나절 미용실은 늘 그렇듯 아줌마들 몇이 진을 치고 앉은 풍경이다. 주인 미용사는 내 머리를 자르고 등뒤의 그녀들은 또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들을 내놓는다.
고현정이 오늘 산청엘 왔단다. 미실이 죽는 장면을 황매산에서 찍는다고 누구누구 엄마가 구경 갔다고. 잠시 선덕여왕과 고현정, 그리고 신라 때 이곳 산청이 어땠었다는 둥 역사 이야기가 오간다. 가까운 설비 아저씨가 공사를 하려고 땅을 파다가 유골을 발견했다고 뻥을 치더라는 이야기까지.
<선덕여왕>의 미실이가 다음 주에 죽으면서 하차한다는 이야기는 과도한 홍보로 다 알고 있던 터. 내가 산청엘 갔던 날은 금요일이었다. 그렇담 월요일에 방영될 드라마를 그날, 바로 사흘을 앞두고 촬영하는 것이다. 쪽대본 쪽대본 하더니 과연 드라마들의 제작여건이 죄다 그 모양인가 보다. 세상에. 그러니 드라마가 얼마나 엉성하고 질이 떨어지는지 알겠다. 근래 가장 시청률이 높고 잘 나가는 드라마인 선덕여왕이 이 지경이니 여느 것들은 말해 무엇하리. 참말 아침에 대본을 건네받고 오후에 촬영해서 그날밤에 방영한다는 신화같은 이야기가 상존하고 있는 걸 알겠더라.
워낙 재주들이 많아서 그런 것들을 쉽게쉽게 만드는 건지는 몰라도 참 해도 너무한다는 그날의 단상이었다. 우리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자는 저들의 말을 스스로 삼켜버리는 세태상이 좀 씁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