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가을인데도 추위가 기승을 부려 일주일 이상 한파가 계속되었다.
십리 대숲이라 해서 원래는 상당히 긴 대나무 숲이었다 하는데 지금은 절반 밖에 안 된다.
4년 전 겨울, 방문했던 그날도 엄청 추워 손발이 다 얼얼하더니만,
대숲의 그늘 속으로 들어가니 냉기가 더 뼛속으로 스며든다. 푸른 숲. 청량한 바람과 상쾌한 향기. 기온은 차도 몸으로 감겨드는 감촉은 비길 데가 없다. 늦가을 오후의 해는 노루꼬리만큼 남아 마지막 볕을 거두려 하고 있다.
대나무 잎이 서걱이는 소리와 줄기 부딪치는 따각 소리가 참 듣기 좋다. 저절로 심호흡을 하게 되는 곳.
날이 추워서인가, 숲속에 거니는 사람이 드물다. 호젓하고 한갓진 숲의 정취를 만끽한다.
이윽고 꼴깍 해는 넘어가고 대숲에 어두운 산그늘이 내렸다. 더욱 짙은 초록세상이 된다.
대숲 뒤 공터에 까마귀들이 모여든다. 이곳을 찾아온 목적이 이 까마귀를 보고 싶어서다. 울산 태화 강변, 특히 이 대숲의 까마귀는 이제 명물이 되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겨울이면 수많은 까마귀가 찾아온다. 관계자들에 의하면 약 4만 마리가 된다고 한다. 여름엔 백로들의 서식지로 약 2만 마리가 깃들어 산다는데 겨울 까마귀는 그 곱이나 된다. 그 장관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과연 숲뒤 공터에 수를 헤아릴 수 없이 새카맣게 까마귀들이 집결읗 하고 있다. 이제 시작인 모양으로 숫자는 점점 더 불어나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질수록 성안 쪽 하늘에선 쉴 새 없이 까마귀가 날아들었고 때맞춰 붉은 노을이 진 하늘에 몇 개 그룹씩 떼를 지어 비행을 하곤 한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이 날아올까. 들뜬 가슴으로 카메랄 셔터를 눌러댄다.
아직도 까마귀는 계속 날아오는데 카메라가 방전이 된다. 날이 추우면 건전지가 빨리 소모가 된다. 낙담한다. 내 저것들을 담으려고 일부러 왔건만 이제 시작인데 카메라는 이제 소용이 없다.
어쨌든 눈으로 보는 그것은 정말 장관이다. 날이 쩨법 저물자 성안 쪽에서 날아오는 숫자도 뜸해지고 놈들은 드디어 새카맣게 떼를 지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저들에게 저 군무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간의 눈으로 보기엔 아무 쓸데없는 저 날갯짓을 왜 하는지 그저 황막하게 바라볼 뿐.
인간들 구경하라고 하는 행위는 분명 아닐진대.
신성하고 엄숙한 제전의식 같은 것이기도 하리라.
날은 추워 몸은 얼어붙는 듯 한데 나는 그 신비하고 황홀한 광경을 넋이 빠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은 너무나도 넓고 다양하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널려 있는 게 이 세상이라는 큰 바다이다. 우리가 삶을 산다는 건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은 것들을 체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