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낙산사, 젊은날의 초상

설리숲 2010. 12. 6. 22:12

 의상대 하면 그냥 젊은 날의 청춘으로 관념이 박혀 있다.

 공순이였던 내 누이는 주말이면 화려한 외출을 하곤 했다. 화려하다 하지만 그래 봤자 빨간 티셔츠에 파란 블루진 거기에 챙모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70년대를 살았던 그들의 이력이 보통 그러하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미싱을 돌리고 걸핏하면 야간잔업에 동원되었다. 그들이 회색빛 70년대를 가꾸고 이룩한 ‘산업의 역군’이었다. 암울한 현재, 불투명한 미래를 숙명처럼 몸에 감고 먼지 나는 봉제현장에서 그렇게 청춘을 보냈던.

 

 그럼에도 그들은 늘 즐거워 보였다. 이따금 저녁 어스름에 공단길을 걷다 보면 공순이 공돌이들이 이곳저곳에서 쏟아져 나오곤 했는데 적어도 어린 내 눈에 비친 그들은 팍팍한 삶이 아닌 싱그럽고 자유분방한 청춘들로 보였다. 아가씨들의 톤 높은 재잘거림, 제 동료들과 장난질치던 청년들의 호방함, 공장 마당에선 공놀이도 즐기고 저녁 야식을 먹으러 식당으로 줄지어 가는 사람들도 그랬다. 누가 감히 그들을 공순이 공돌이라 비하하는가. 우리 선배들의 그 청춘이 있었기에 회색빛 세상이 선명한 세상으로 탈피하여 우화하지 않았던가.

 칙칙한 작업복을 벗고 주말이면 내 누이는 나들이를 나가곤 했다. 청바지와 통기타 생맥주를 즐겼다. 내가 회고해보면 어쩌면 우리가 지내왔던 시대에서 가장 낭만적인 세대가 아니었을까 한다. 비록 공순이였지만 가운을 벗으면 가장 미추룸한 청년이고 가장 아름다운 처녀들이었다. 그들이 발산하는 아름다움은 내게 동경을 주기도 했다. 나도 이담에 크면 공장에 다녀야겠다고.

 빨간 티셔츠에 파란 블루진, 그리고 챙모자를 쓰고 일요일이면 그들은 산으로 바다로 쏘다녔다. 동료들에겐 흑백 카메라도 있었고 통기타도 있었고 카세트도 있었다. 어디론가 가서 김밥을 먹고 사진을 찍고 신나는 노래에 몸을 꼬며 고고 디스코를 추었을 거다. 그것이 인생이다. 너무나 멋진 청춘시대였다.

 누이가 받아온 사진들에는 울산바위 오색약수가 배경으로 있고 의상대 낙산사가 찍혀 있곤 했다. 누이 말고도 형이 다녀온 사진에도 의상대가 곧잘 등장하곤 했다. 그런 까닭으로 의상대는 나에게 풋풋한 청춘의 상징처럼 각인돼 왔고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아, 나도 청년이 되면 공장에 가서 일을 하고 일요일엔 청바지 입고 설악산에 의상대에 낙산사를 가야겠다. 나의 꿈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렇건만 어른이 되고도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의상대를 갔었다. 어쩌면 동경의 대상을 좀더 오래 신비롭게 간직하고픈 무의식의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건 그 해 봄에 뜬금없이 낙산사를 찾았다. 빨간 티셔츠에 하얀 챙모자는 아니었고 덥수룩한 머리칼에 두툼한 털 잠바였을 거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분명한 거리감. 우리 관계가 머지않아 와해될 것이 분명하게 감지되고 있었다. 근데 왜 의상대를 찾았는지는 모르겠다. 아직은 이른 봄 연신 불어대는 바닷바람에 텅 빈 내 마음이 더 추웠던 기억이다. 내 어린 시절의 청춘의 상징이었던 의상대를 비로소 만났다. 너무도 평범한, 누이들의 사진에서 늘 봐왔던 것에서 조금도 다르지 않은 누각이었다. 의상대보다는 바다 절벽 위에 자리한 홍련암에 나는 알지 못할 슬픔을 느꼈다. 왜 넓은 버덩들을 놔두고 저렇게 벼랑에다 암자를 지었을까. 그 건축가에게 깊은 고뇌가 있었을 것을 내 마음대로 추측하고 혼자 서러워했다. 겨우 다섯이나 들어갈 수 있을까 암자가 너무 작아 또 슬퍼졌고 저 아래 출렁이는 파란 바닷물이 또 슬프게 했다. 온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던 그녀가 못 오겠다고 했다. 이미 그런 날이 오리란 걸 미약하게 감지하고 있었지만 아무 이유 없이 약속을 취소하는 데에는 그만 턱 하고 맥이 빠졌다. 홍련암 난간에 기대 아무 이유 없이 슬퍼하다가 낙산사 경내로 되돌아와 공중전화를 걸었다. 할말이 많을 것 같았는데 막상 동전이 떨어지면서 사실 할 얘기도 없음을 알았다. 그냥 낙산사에 왔는데 바람이 너무 불어 춥다고. 따뜻한 봄에 한번 왔으면 좋겠다는 별 의미도 없는 말만 건네고 허망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이듬해에 낙산사는 불에 탔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건물들이 세워졌다.

 겨울이다. 또 뜬금없이 낙산사를 찾았다. 청춘의 상징인 의상대는 여전히 거기 벼랑 위에 있었다. 무료로 국수를 공양해 준다. 국수를 먹고 나오는데 햇볕이 노랗다. 영하로 떨어진 기온이래도 툇마루에 쏟아지는 볕은 봄날 같다. 다시 찾은 홍련암을 보아도 예전의 그 슬픔은 없다. 엉뚱하게 북쪽 먼 하늘을 쳐다본다. 그 전날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했다. 세상이 하 수상하여 검푸른 수평선 저 너머에서 날아올지 모르는 무자비한 포탄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 삶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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