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그들의 가소로운 이중성

설리숲 2010. 9. 11. 12:41

 

 올해도 쌀농사가 풍년이고 정부 창고에는 지난 쌀이 아직도 그득하다. 엊그제 농민들이 모여 대정부시위를 했다. 남는 쌀 북한에다 지원하라고.

웃기고 있다. 저들이 언제부터 북한의 식량을 걱정했던고. 기실 북에다 퍼 준다며 좌빨이라고 대통령을 폄훼하지 않았던고.

 

 우리나라 농민들은 대체로 보수성향이다. 물론 다는 아니지만 내가 겪은 사람들을 보면 대체로 그렇다. 총선이나 대선결과를 보면 확연하다. 장년 노년층의 지지율은 보수파가 압도적이다. 이들이 또 투표율도 높아 보통 보수후보가 유리하게 선거를 이끈다.

 이들은 또 북한에 대한 시각도 아주 부정적이다. 물론 전쟁을 치른 세대와 그 직후의 세대들이 많기에 그럴 법도 하다. 그래서 여전히 북한에 대해 적대적이고 진보진영의 사람들을 빨갱이라 치부한다. 그걸 이용하는 게 현 수구세력이고.

 노무현 정권 때 쌀 개방이 있었다. 온 나라가 뒤집어지게 농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정권이 바뀌어 이명박 정권 때 광우병 쇠고기 수입파동이 있었다. 온 나라 뒤집어지게 각계각층이 들고 일어나 촛불시위를 벌였지만 정작 농민들의 반응은 의외로 조용했다.

 쌀 개방처럼 생계에 직접 타격을 받으니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농민이 아닌 나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중대한 사안임을 절감했다. 그런데 쇠고기수입 때는 왜 입을 다물었나. 그것 역시 축산농민에겐 테러나 마찬가지였는데.

 

 이처럼 우리 농민들의 성향은 극명하게 나타난다. 연이어 노무현 김대중의 사망이 잇따를 때도 저들의 반응은 역시나였다. 그렇게 이북에다 퍼주면서 빨갱이짓하더니 잘 죽었다는, 사자(死者)에 대한 일말의 측은지심도 없었다.

 그러던 사람들이 이제 쌀이 많아 자신의 처지가 위기에 몰릴 것이 감지되니 북한에 쌀 보내주라고 저리 목청을 돋우고 있는 것이다. 무릇 사람의 욕심은 그런 것이다. 내 밥그릇은 지켜야 한다는. 그걸 누가 탓하랴. 어차피 자본주의의 속성이 저 사람의 주머니가 통통 비어야 내 주머니를 채우는 것이거든. 그렇더라도 경박한 그 이중성에 나는 기분이 더러운 것이다.

 전에 쌀 수입반대시위 때, 시위 중간중간 참으로 빵을 먹곤 했다. 이 빵이란 게 거의 백 프로 수입 밀가루로 만들었다. 아이구, 쌀은 수입하면 안 되고 그러면서도 수입한 밀가루빵은 먹어야겠고. 이 아이러니. 이 웃지 못 할 이중성.

 

 쌀이 남고 안  남고를 떠나 북한에 지원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순수한 인도적 차원이든 내 밥그릇을 채워야겠다는 차원이든 그들에겐 남측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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