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삼층밥

설리숲 2009. 2. 23. 22:52

 

 지지리도 가난했던 그 시절, 명일 또는 생일이나 먹었던 그것

 이밥

 

 이밥.

 지금은 완전히 사라진 말이다. 북에선 아직도 쓰이는 그것을 사람들은 다들 쌀밥이라 한다. 내 어렸을 적엔 이밥이었는데 국민학교 들어가니 쌀밥이라 하는 애들이 더러 있다. 그 말이 어색하고 우스꽝스럽더니 에고, 그게 고착화될 줄이야!

 보리를 보리쌀, 조를 좁쌀이라 하듯 입쌀은 '이'다. '이'는 벼를 말한다. 나무에도 조팝나무, 이팝나무가 있다. 그러니 벼로 만든 밥이 '이밥'인 것이다. 쌀밥은 내게 아직도 생경하다.

 

 어느 것 하나 그렇지 않은 게 있을까.

 세월이 가면 사라지는 말이 있고 변형되는 말도 있다. 갈라진 남북의 말들이 서로 제 위주로 변형되다 보니 점점 이질화되고 있는 것이다.

 내 전기밥솥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한때 유행했던 '삼층밥'이란 말도 어느 때인지 사라지고 말았다. 석유곤로나 연탄불, 그 이전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안치던 때, 새며느리의 전유물이거나 철딱서니 딸래미의 어설픈 동자가 삼층밥이라는 달갑지 않은 밥들을 지었다.

 문명의 이기로 삼층밥은 영영 사라졌다. 떠꺼머리 총각도 밥알 하나 안 태우고 동자를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겨우 몇 십 년 밖에 안된 사회상이다.

 

  

 집에서는 곤란한 애인과의 통화를 위해 살을 에는 겨울밤에 골목 입구 병문에 있는 공중전화를 붙잡고 오들오들 떨던 시절이 있었다. 카드가 나오기 전엔 동전을 넣고 전화가 끊기지 않게 부지런히 동전을 넣어 가면서 나눴던 숱한,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말들. 문명은 자꾸 발전해 전화부스가 서고, 전화카드가 생기고, 가겟집 모서리 벽에  얹혀 있던 구닥다리 전화기도 슬그머니 사라져 갔다. 거리는 온통 공중전화부스 천지였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부스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세월은 더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 중이다.

 깜빡 휴대폰을 놔두고 외출한 날 공중전화를 찾다가 그 많던, 아니 그 많아 보이던 공중전화가 정말 드물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아 이러다가 사라지는 거구나.

 

 

 KT에선 공중전화를 많이 쓰라고 홍보 아닌 홍보를 하는 것 같은데 장사 안된다고 슬그머니 하나씩 철거해 가면서 무슨 되지도 않은 수작인가. 몇 개 안 남은 그것들마저 결국은 다 없애 버릴 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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