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시시각각 변했다.
겨울 짙은 해변 그리고 포구,
그리고 사람.
떠돌이 유랑생활에는 늘 사람과의 만남이 있다.
다가오는 사람 떠나가는 사람,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어떤 과거가 있는지는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고 알아서도 안된다.
그의 사연은 그만이 지고 가야 한다.
낯선 곳에서 무람하게 손내밀며 호형호제하는 사람은 당연 정이 간다.
그게 여행이다.
멋진 풍경, 낯선 정서만이 여행은 아니다.
만나고 또 보내고 짧거나 긴 여정을 함께할 길동무를 그리워하는 것도 여행의 속성이다.
바다에 서면 자꾸만 쓸쓸해진다.
저녁이 오는 사장은 더욱 그렇다.
나라미로 선 횟집에서 때이른 크리스마스캐럴이 간단없이 흘러나온다.
그러고 보니 세모가 멀지 않았다.
채석강.
격포.
하늘과 구름은 변화무쌍하고 시시각각 그 색깔이 변하여 빠르게 날이 저물고 있음을 느낀다. 마치 세월이 고속으로 달려가는 것처럼 겁이 나기도 했다.
이윽고 밤이 왔다.
동녘에 달이 뜨고 하늘과 바다와 파도는 보랏빛으로 물들더니 이내 어두워졌다.
내일은 스무골로 가야겠다.
12월 14일
혀
― 격포에서
적벽강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혓바닥을 가진 짐승이 산다
온갖 것들을 핥으려는 그의 버릇은
아주 오래된 습관일 뿐이어서
뱃속을 뒤지면 수세기 전의 물건들이 나오곤 한다
내가 적벽에 머물렀던 밤에도
밤새도록 내 방 창문을 두드리고 핥고 침을 퉤퉤 뱉기까지 했다
혓바늘이라도 잔뜩 돋았는가 서걱서걱 마른 모래 스치는 소리를 냈다
온종일 갯것들의 등짝을 어르면서 놀았거나
백 년에 한 뼘쯤 곁을 허락하는 해안가 절벽을 탐했을 것이다
소금기에 절여질 대로 절여진 그에게
세상은 온통 싱거운 것들뿐이어서
공연히 빈 입맛을 쩍쩍 다시거나
혓바닥을 깨물어 바다 한쪽을 벌겋게 물들이곤 한다
제게서 번져가는 속절없는 핏빛에 숨이 콱 막히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몇 척의 고깃배를 불러들이고
갈매기들을 꼬드겨 순식간에 그림 속에 가둬 버린다
다시 한가해진 그가 크게 몸을 비튼다
이럴 때 그는 한없이 순한 짐승이라도 된 듯
허연 혓바닥을 길게 빼물고
철썩철썩 제 등짝을 두드리며 논다
박미라
김철민 -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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