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그대 울고 있는가

설리숲 2007. 4. 30. 13:00

 

 남자에게 있는 정자의 수는 2억~4억 마리라 한다.

 실로 엄청난 숫자다. 그 반만 있어도 정자수가 부족해 불임 가능성이 높다 한다.


 내가 이 세상에 나온 확률을 생각해 본다.

 수십억의 사람들 중에서 하필이면 내 아버지와 어머니 그 두 분이 만난 결과로 내가 나왔다. 상대가 바뀌었다면 나의 존재는 없을 터였다. 그 확률을 계산하기란 내 머리로는 어림없다.

 그 다음,

 아버지의 수억 마리 정자 중에서 하필이면 그놈이 수정한 결과로 내가 나왔으니 그놈이 아닌 다른 놈이었다면 역시 나의 존재는 없는 것이다. 그 확률은 또 어떤가.


 그러니까 내가 이 세상에 나와 존재한다는 건 감히 계산도 안되는 희박한 확률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라는 하나의 인간은 참말 귀중한 몸이다.

 어찌 나뿐이겠는가. 내 이웃 친구 동료 모두가 그러한 존재들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귀한 생명을 하찮게 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게 얼마나 삿된 행동인지를 깨닫게 된다.

 이 세상 모든 생명은 소중하고 귀한 것이다. 불교에서 세상에 나온 것 자체가 고통이라고 하긴 한다만 그걸 깨닫고 아는 것도 세상에 나왔으니까 가능한 거지.


 그렇담 사람만큼 다른 짐승들도 귀한 생명인 건 마찬가지다. 그들도 그 희박한 확률을 타고 났다. 사람을 귀히 여기는 만큼 모든 생명들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지 않을까. 살생은 그래서 살면서 늘 고민에 고민을 해야 할 행위일 것 같다.


 


 두 명의 젊은이가 숲을 찾아왔다.

 사랑하던 개를, 죽어 화장한 뼛가루를 안고 이 골짜기를 올라왔다.

 개를 사랑하는 이에게 개와의 이별은 슬프고 가슴 찢어지는 고통일 수도 있겠다. 요즘은 개도 화장을 하는 모양이다. 사람도 안락하게 죽지 못하고 대충 처리되어 사라지는 사람이 있을진대, 저토록 주인의 애틋한 눈물 속에 화장되는 개는 얼마나 팔자가 좋으냐. 개팔자 상팔자?

 

 

 

 개와의 이별을 위해 이곳까지 찾아와 2박 3일을 머물 생각을 한 두 젊은이의 심성이 참 가상하다.

 그들을 위해 묘지를 잡아주었다. 뼛가루를 묻고 그 위에다 어린 벚나무를 심었다.

 희박한 확률을 타고 난 하나의 생명이 이렇게 또 마침표를 찍었다.

 

 

 

  그대 울고 있는가.

 

 그간 너무 울어서 이젠 눈물도 없다며 아가씨가 환하게 웃는다. 그렇지. 내 경험으로도 화장로에 들어가는 순간이 가장 슬프더니 그 이후로는 그저 덤덤하더라.


 앞으로도 이 아가씨는 더러더러 이 골짜기에 찾아오겠지.

 


 

 나는

 나는,

 개 따위에게 정을 주지 않을 거다 기필코.

 한번 얽은 관계를 청산하기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그것이 사람이든 개든 지렁이든 이별은 참으로 아픈 것이다.


 어쨌든 저 정도면 개 팔자 치곤 짜장 상팔자다.

 

'서늘한 숲 > 햇빛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집에 작은 무덤 하나 있다  (0) 2007.06.09
파리는 다리가 몇 개지?  (0) 2007.06.07
그녀의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0) 2007.04.24
애마부인, 나의 연인들  (0) 2007.04.09
경포바다  (0) 2006.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