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애마부인, 나의 연인들

설리숲 2007. 4. 9. 13:17

 

 질풍노도의 시기?

 오우 No!

 고삐리 시절은 억눌린 욕망의 시절이었다. 적어도 우리 또래와 그 선배들 세대는.

 

 대입이란 거대한 산맥을 앞에 놓고 아이들은 아침부터 오밤중까지 수학의 정석, 성문종합영어였다. 도시락은 하루 두 개. 서울대 못가면 인생 쫑나는 걸로 알았다.

 K대 떨어지면 K대 가고, 그 K대 떨어지면 K대 간다는 말...

 고대 떨어지면 강대 가고, 강대 떨어지면 군대 간다는 자조 섞인 유머였다.

 뭐 그렇게 한다고 해도 갈 놈은 가고 못 갈 놈은 역시 못가는 게 대학이었다. 후에 돌아보면 하기 싫은 공부, 어차피 실력도 안될 것을 그리 지랄염병을 했다는 것에 억울하기만 한 청춘들도 꽤 많았으리라. 그럴 거면 그저 여자애들이나 꼬셔서 산에 들에 놀러나 다녔으면 그게 얼마나 생산적(?)인 나날이었을까. 하긴 그 풍토에서도 일부는 그렇게 놀고 지내는 아이들도 있긴 했다.

 

 그런데 아무리 범생이거나 또는 마지못해 범생이 흉내를 내는 놈들이라지만 사내, 즉 수컷의 본능이야 어찌하리.

 인생에서 가장 혈기방장한 때가 그때가 아니더냐. 자위를 시작한지도 이미 오래다.

 아침에 만원버스를 타고 등교하려면 육림극장 앞을 지나간다. 극장 간판에 농염한 여배우의 관능적인 그림들. 골목마다 붙어있던 선정적인 포스터들. 당시의 추세는 에로영화였다.

 또한 <주간경향>이니 <선데이서울>이니 하는 주간지에 이쁜 탤런트들이 비키니차림으로 누워서 뇌쇄적인 눈빛으로 이쪽의 사내놈들을 게슴츠레 바라보던, ‘나 오늘 한가해요’를 유행시켰던 그 사진들.

 도대체가 이 사회는 아이들을 피말려 죽이려고만 하였다.

 

 그때 등장한 여인이 안소영이었다.

 애마부인.

 전설적인 말 시리즈.

 무명이었던 그녀를 일약 에로배우의 상징으로 만들었던 시리즈 제 1탄이 그해 육림극장 간판으로 올려졌다. 1982년이었다.

 숨이 헉 막힐 것 같은 풍만한 여인 안소영. 나 뿐만이 아니라 아이놈들은 대부분 침 좀 흘렸을 것을 안다. 그렇지 않음 그게 사내가 아니라 빙신이지.

 

 

                  

 

 

 하지만 어쩔거야?

 보고 싶은 맘이야 간절하지만 애들이 어트게 들어가냐고. 범생이거나 마지못해 범생이 흉내나 내고 있는 놈들이 말야. 게다가 강원도를 대표하는 명문인 대 춘고인 아니더냐.

 끓어오르는 불을 두 손으로 억누르고 그저 성문조합영어나 끌어안고 달랠 수밖에.

 

 그래도 어느 조직이나 튀는 놈들은 있기 마련이니,

 내 짝꿍 놈이랑 고 뒤엣놈이 그런 자식들이었다.

 두 놈은 하루 종일 안소영 얘기만 해대더니만 기어코 거사를 치르기로 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도 고딩놈들이 가발을 뒤집어쓰고 고고장에 들어가는 장면이 나오지만,

 다음날 두 놈들은 가발을 사왔다. 그 당시 가수 이용이 한가락 풍미하던 때라 남자들의 상당수가 뽀글뽀글 퍼머를 하는 게 유행이었다. 녀석들도 그 뽀글뽀글 가발을 가방에 넣어가지고 왔는데 그걸 뒤집어쓰고 극장엘 들어가겠다는 거였다.

 원 미친 넘들. 가발이 한 개 얼만데 그걸 덥석 사느냐 말이지. 그 돈이면 영화를 열 편도 더 보겠다....

 하기사 시시한 영화 열 편 보다야 화끈한 거 하나 보는 게 낫기야 하겠지. 그것도 안소영이잖아. 홀딱 벗은 풍만한 안소영이 혈기방장한 우리들에겐 진리요 감로수나 한가지였으니까.

 

 어쨌건 지리한 그날의 수업은 다 끝났고 놈들은 한껏 들뜬 얼굴을 하고 교문을 빠져나갔다. 가방 속엔 가발 말고도 갈아입을 옷가지도 들어있었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범생이인 나는 또 버스를 타고 얌전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버스는 예의 육림극장 앞에서 한 번 섰고 나는 풍만한 안소영이 그려진 간판을 우러러보듯 쳐다보았다.

 

 

 애마부인.

 말이 등장하는데 愛馬夫人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愛麻夫人이다. 참내...

 얼핏 귓가로 듣기론 愛馬夫人이란 제목이 좀 선정적이라 심의에 걸리지 않게 그랬다던가... 참내.

 범생이라 초대 애마 안소영의 벌거벗은 몸은 보지 못했지만, 나는 고교를 졸업한 그 이듬해부터는 애마부인 시리즈를 죄다 섭렵했다.

 두 번째 여인은 오수비였다.

 크~~ 그 감격 그 행복... 극장 화면은 엄청나게 크다. 그 큰 화면에 가득차던 오수비의 찌찌. 하지만 애석하게도 젖꼭지만은 아슬아슬하게 감췄다. 근래야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훌떡훌떡 벗어젖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젖꼭지 노출은 금기사항이었다. 아니 큰 젖통은 다 보여주면서 그까짓 포도알이 뭐가 그리 대수라고. 나원참 어이가 없어서...

 그렇긴 해도 화면 속의 오수비는 갓 고삐리를 졸업한 내게는 천국의 세계였다. 흐미!!

 

 

        

 

         

 

 

 

 그리고 3대는 김부선, 4대는 주리혜.

 이후로 소비아 이화란 유혜리 오노아 등등 정인엽에서 석도원으로 감독을 바꿔가면서 그 신화는 오래도록 이어졌다. (해마다 한 편씩 1994년까지 나왔는데 처음의 1.2.3편이 절정기였고 그 이후로는 영 마뜩치 않았다)

 

 그리하여 소년은 인생의 한 단계를 거뜬하게 뛰어넘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지나보면 별거 아닌 것을...

 하지만 여자의 허벅지만 보아도 몸의 한 부분이 반응을 보이던 그때가 그래도 순수하고 푸릇해서 좋지 않았을까.

 이제는 그 모든 것을 통달해(?) 버려 S라인을 뽐내며 부비부비하는 여성을 보아도 그저 맨송맨송하니 이제 나도 퇴물이 되어 간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

 

 

 뽀글뽀글 가발을 뒤집어쓰고 안소영을 즐긴(?) 두 놈들은 담날 학교에 와서 침이 튀어 바다가 되도록 애마부인 이야기를 했었다.

 그 중의 한 놈이 지금은 GTB의 일선기자로 있는 이 모 기자다.

 범생이 흉내는 아니 냈어도 그만하면 사회에서 제법 성공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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