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파리는 다리가 몇 개지?

설리숲 2007. 6. 7. 12:36

 

 “파리가 다리가 몇 개지?”

 밥을 먹다가 

 밥상에 파리들이 설치고 다니는 걸 보고 도인(道人) 하나가 뜬금없이 질문 하나를 던진다.

 그러자 다들 의견이 분분하다. 넷이라는 사람도 있고, 누가 여섯이라 하자 에이 여섯 개는 아니라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고, 여덟인가? 심지어는 다섯 아닐까 하는 사람도 있다. 다섯이라... 재밌으라고 한 말인 줄 알았으나 그 태도가 자못 신중해 웃으면 결례가 될듯하여 억지로 참았다.


 이 사람들 뭐야. 명색이 도인이라는 양반들이 그래 인간과 가장 가깝고 친근한 파리를, 그 다리가 몇인지를 모르다니.

 하긴 너무 고차원적인 걸 추구하다 보면 정작 필요한 것, 또는 저급한 것은 그냥 우습게 지나칠 수도 있긴 하다.

 나는 꼬마였을 때부터 파리 다리가 몇 개인지를 알았으니 내가 그 도인들보다 더 유식한걸까 아님 저차원적인 인간이기 때문일까.

 

 조금은 황당한 상황이라 나는 내내 한마디도 않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내게도 한마디 던져 왔다.

 “파리 다리가 몇 갠가요?”

 나는 짐짓 거드름 피는 시늉을 하며 목소리도 드레지게 깔았다.

 “여섯 갭니다”

 “됐네. 홍림 씨가 여섯 개라면 틀림없을 테지. 파리 하나 안 잡아도 되겠어. 이상 끝”

 어쨌든 도인들과의 만남은 소소한 것 하나하나가 내게 귀한 가르침을 준다. 타산지석도 가르침이라 한다면 말이다.

 

 

 이사온 지 한 해가 지나도록 내 오두막 주위를 둘러보질 못했다. 숲 밖으로 나가 있는 날이 대부분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그래도 내 집 뒤란에 뭐가 있는지 울 밖 밭두렁에는 무슨 풀이 자라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반년 만에 오두막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씨도 심고 보기 싫게 뻗어나간 나뭇가지도 자르고 그러다가 발견한 것...

 집 주위에 천궁이 지천으로 자라고 있었다. 아니 이 귀한 약초가!

 그렇지. 제 집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인간이 먼 밖으로만 나댕기는 꼴이나 세상살이에 도통한 도인들이 파리 다리가 몇인 줄 모르는 것이나 다를 게 없지.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도 있듯이 가장 가까운 걸 하찮게 여긴다면 지극히 심오하고 고상한 걸 추구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고.

 대체로 다리가 많은 생물일수록 움직임이 느리고 둔하다. 노래기나 지네 따위의 다지류들이 그 예에 속하며,

 다리 수가 적어질수록 점점 빨라진다. 여덟 개 보다는 여섯 개가, 여섯 개 보다는 네 개인 생물들이 훨씬 빠른데, 호랑이 사자 토끼 개 등 지금 우리 주위의 네발가지 동물들이 다 그 부류에 속한다.

 다리 넷보다는 둘인 돌물이 당연 더 빠른데 많은 새 종류가 바로 그렇다. 물론 다리가 아닌 날개를 이용하지만 날지 못하는 타조도 마찬가지로 엄청 빠르니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날개가 있어도 나비를 비롯한 여섯 개의 다리를 가진 곤충들은 그리 빠르지 못하니까)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은 사람이다. 인간은 다리가 둘인데도 왜 그리 빠르지 못할까? 이것 참 수수께끼다. 관련 학자들이 연구해 볼만하지 않은가.


 거북이 토끼 지네가 있었다.

 토끼네 집에 모여 놀다가 심심해져서 아이스크림을 사다 먹기로 했다.

 거북이가 나섰으나 두 친구가 말렸다. 워낙 느림보라 아이스크림이 다 녹아 돌아올 거니까.

 그래서 지네가 방을 나섰다. 그런데 오래도록 지네는 돌아오지 않았다. 두 친구가 나가 보니 지네는 아직도 현관에 앉아 신발을 신고 있었다. 지네는 발이 38개다. 그 많은 발에 일일이 신발을 찾아 신어야 하니 그러고 있었던 것이다.

 할 수없이 발 빠른 토끼가 다녀오기로 했다. 그런데 토끼 역시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두 친구가 나가보니 토끼 역시 아직도 현관에 앉아 있었다.

 “이것도 지네 신발, 이것도 지네 신발, 이것도... 내 신발은 어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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