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 자리에서 있어 들고나는 등산객이 편히 쉬던 산장이었다.
지난 여름 어느 날 그 앞을 지나다가 괴괴한 풍경에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나 백담산장은 폐쇄되어 문을 걸어 두고 있었던 것이다. 요긴한 위치에 있어서 요긴하게 이용하곤 하던 산장이었다.
설악에 처음 발을 디디던 그날에 머물던 인연으로 오랫동안 상징적인 마음의 안식처로 삼고 있었다. 울창한 숲 안에 조촐하게 서 있던 그것.
아무 이유도 없이 떠난 여행길에서 정수와 함께 했던 그것이 마지막 기억이다. 그날도 무성한 나무 그늘 아래 날은 저물어 어스름하던 그 풍경이 사뭇 잊히지 않더니만.
나는 그 산장에서 여자를 죽였다. 그녀는 공허하고 부질없는 현실에 회의를 느꼈다. 세상에 딸과 아들을 남겨 두고 깊고 어두운 골짜기 그 어딘가로 영원히 들어가 버렸다.
나는 그 산장에서 삶과 사람과 사랑에 중독된 여정을 보았고 그 인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 오랜 시간을 사유와 고뇌에 침잠해 있었다. 마침내 소설의 맨 끝 마침표를 찍고서는 바로 정수를 데리고 백담을 찾았었다. 그곳에 내가 죽인 그 여자는 물론 없었고 여전히 등산객들의 고단한 걸음들이 들고나고 있었다. 한여름인데도 저녁 무렵엔 스산하게 을씨년스러웠고 쥐똥나무 숲은 여전히 짙푸르게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지난 여름, 여전히 숲은 무성하게 푸르지만 백담산장은 폐가가 되어 있었다. 폐가는 왠지 괴괴하고 으스스하기 마련이다. 저녁 무렵에 되어 인적도 차츰 줄어들고 숲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어쩐지 무섬증이 일어 그곳을 떠나 오고 말았다.
모든 불행한 영령들이 집안 구석구석 깃들어 있다가 어두워지면 일제히 나와 해코지를 할 것만 같았다. 내가 죽인 그 여자도 그 중의 하나일 것임을 짐작하면서.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 셔틀버스가 운행하는 관계로 산장이 기능을 잃어 영업을 중지했다 한다.
더 편한 것만 지향하다 보니 예전 매표소에서 두 시간을 걸어 들어가곤 하던 길을 버스가 버젓이 활개치며 드나들고 있었다. 차 하나 지나치려면 보행자는 바짝 길 옆으로 위태하게 비켜서서 기다려야 했었는데 이제는 아예 그 길을 걸어갈 엄두조차 못 내겠다.
말은 늘 자연을 보호하고 생태계를 위한다 하면서도 사람의 하는 짓은 늘 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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