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음악 이야기

눈보라 속 로망스

설리숲 2010. 11. 14. 00:33

 

 

 

 그날 밤 눈보라가 몰아쳤다. 그리고 한적한 교회에서는 소박한 결혼식이 열린다.

 

 

 미망인의 딸 마리아는 자신의 집에 세들어 사는 가난한 장교 블라디미르를 사랑한다. 그러나 어머니의 반대로 마음만 애끓다가 결국 모험을 하기로 한다. 몰래 둘만의 결혼식을 올린 뒤 부모의 승낙을 받기로 한 것이다.

 어느 한적한 교회에서 만나 결혼하기로 약속했지만 그날 밤 야속하게도 엄청난 눈보라가 마을을 휘몰아친다. 마리아는 먼저 교회에 도착해 있었지만 신랑 블라디미르는 눈보라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고 만다. 그때 마침 그 교회를 지나가는 젊은 청년이 있어 사람들이 그를 마리아의 신랑으로 알고 안으로 불러들여 결혼식을 올린다. 이내 마리아는 그가 블라디미르가 아니 것을 알고는 그만 혼절해 버린다.

 당연 둘의 결혼은 취소가 되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두 사람은 작별하게 되는데 겨우 눈보라를 헤치고 교회로 찾아간 블라디미르는 아무도 없는 텅 빈 것을 보고는 낙담한다.

 사건 이후로 마리아가 몸져 드러눕게 되자 할 수없이 그의 어머니는 결혼을 승낙하지만 상황이 엇갈려 블라디미르는 애인에게 작별의 편지를 남기고 떠나고 만다. 그리고 1812년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러시아를 침공해 오고 블라디미르는 이 전쟁에 참전해 결국 전사하고 만다.

 

 매력적인 마리아에게는 이후로 수많은 청년들이 구애를 해 오지만 애인을 전쟁터에서 잃은 상처로 인해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한다. 그런 가슴 한편에도 한 청년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 괴로워하지만 결국 부르민이라는 그 청년으로부터 사랑의 고백을 듣게 되자 드디어 지나간 상처를 딛고 그와의 사랑을 약속한다. 그 청년은 눈보라치던 그날 밤 블라디미르 대신에 그녀와 결혼식을 했던 바로 그 남자였다.

 

 

 

 

 동화처럼 순수하기도 하지만 반면 유치하기도 한 이 이야기는 러시아 문학의 선구자 푸슈킨의 소설 속 이야기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그 유명한 시를 쓴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러시아 근대소설의 효시라고 하는 <벨킨 이야기>에는 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한발의 사격’, ‘눈보라’, ‘농사꾼처녀’, ‘장의사’, ‘역참지기’가 그것으로 위의 이야기는 두 번째 에피소드인 눈보라의 내용이다.

 

 작곡가 스비리도프(Georgy Vasilyevich Sviridov)가 이 ‘눈보라’에서 모티프를 얻어 1974년에 <푸슈킨의 작품을 스케치한 음악적인 삽화>라는 부제로 9개의 모음곡을 작곡했는데 그것이 <눈보라>다. 푸슈킨 200주년을 맞아 그의 소설 <눈보라>를 영화화했는데 스비리도프의 곡을 그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다. 그 네 번째 곡인 <올드 로망스>가 그것인데 이 곡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일약 그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다. 눈 덮인 러시아 특유의 서정을 환상적이고 신비한 분위기로 잘 표현했다.

 현대 음악가들의 특징인 딱딱하고 재미없음에서 벗어나 스비리도프는 유독 돋보일 만큼 낭만적이고 수려한 음악을 만들었다. 그는 러시아 전통과 민족주의를 음악을 통해 발산하는 동시에 뛰어난 자국 문학을 주제로 한 성악곡들을 작곡했다. 소련 시절은 물론 소비에트공산주의가 무너진 이후의 그의 행적은 화려하여 예술가 치고는 이례적으로 러시아 예술계의 중추적인 업무를 맡기도 했다. 러시아 민족주의의 선봉장이라는 칭송을 받으며 화려한 말년을 보냈다.

 

 

 이 곡 로망스를 듣고 있으면 눈보라가 치는 드넓은 러시아 평원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참말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아름다운 음악이다.

 

 

       

 

                 

 

                                        


 

 


'서늘한 숲 > 음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들의 달콤한 휴가, 홀리데이(Holiday)  (0) 2011.06.15
재클린의 눈물  (0) 2011.04.18
트랜스젠더  (0) 2010.09.11
자유를 향한 노래, 기차는 8시에 떠나네  (0) 2010.08.20
커피 칸타타  (0) 2010.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