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음악 이야기

자유를 향한 노래, 기차는 8시에 떠나네

설리숲 2010. 8. 20. 08:31

 

 카테리니는 그리스 북부에 있는 도시 이름이다.

 여기 간절하고 애틋한 연인이 있어 먼 곳으로 떠나는 남자를 여자는 슬프지만 슬픔을 가라앉히고 비장한 심정으로 보낸다. 그리고 돌아서서 목울대를 넘는 울음을 삼킨다. 그리고 기약 없는 고통스런 기다림.

 남자는 조국을 위한 어렵고 힘든 일에 투신한 전사다. 평범해 보이는 남녀의 이 이별은 그래서 더욱 비감하고 슬프게 느껴진다. 그를 사랑하지만 조국을 위한 그의 투쟁에 기꺼이 보내고 마는 여자의 슬픔은 거룩하기까지 하다.

남자의 임무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노래에 나와 있지 않지만 이 노래 배경을 보면 쉽게 어림잡을 수 있다.

기차는 8시에 떠나네

 

 이 노래는 그리스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자 작곡가인 미키스 데오도라키스의 곡이다. 많은 외세의 침략을 받은 역사를 가진 그리스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도 포화를 벗어나지 못한 아픔을 겪는다. 대전이 끝나고 보수파들은 외세와 결탁해 정권을 잡고 독재정치를 편다. 전역에서 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한 시위와 소요가 폭풍처럼 휩쓸었다. 1963년 민주화운동의 지도자인 람브라키스가 암살되자 그를 우상처럼 여기던 데오도라키스가 그를 대신해 민주화운동을 이끌게 된다. 데오도라키스는 2차 대전중에 나치에 대항하여 레지스탕스로 활약했었다.

 폭풍 같은 민주화투쟁 열기에 정세가 호전되어 봄날을 맞는 듯 했으나 그것도 잠시, 군사쿠데타가 일어난다. 쿠데타정부는 더욱더 국민들을 억압했다. 데오도라키스는 가장 위험한 인물로 찍혀 그의 음악은 모두 금지곡이 되어 일체 연주하거나 노래할 수가 없었다. 그는 유배지와 수용소를 전전하며 생애 가장 고통스런 시기를 보낸다.  국제여론에 밀려 그리스 쿠데타정부는 그를 외국으로 추방한다. 이국을 떠돌면서 그는 왕성한 음악활동을 한다. 물론 조국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활동이다. 끊임없이 콘서트를 열어 그리스의 현실을 세계에 알리면서 동시에 제3세계 인권평화운동을 펼친다.

 그리고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1974년 데오도라키스는 꿈에도 그리던 조국으로 돌아온다. 조국에서 의원과 장관 등을 역임하며 왕성한 의정활동을 한 그는 그리스 민주화의 상징이 되었다.

 

 2000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지명되었는데 수상은 김대중 대통령이 했다. 그러고 보면 한국과 그리스의 역사는 찍어놓은 듯 같다. 왠지 동병상련의 정이 가기도 한다.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친밀하게 여기는 터키. 그리스는 그 터키와의 역사적 악연으로 오늘까지도 껄끄러운 앙금이 남아 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와 같다. 같은 아픔을 공유한 그리스와 친밀하게 다가오는 터키. 우리에게 또 역사는 아이러니다!

 

 이 노래를 알지 못했다가 <클래식 오디세이>에서 기차 영상과 함께 조수미의 목소리로 처음 들었다. 애조 띤 멜로디와 분위기에 공연히 숙연해졌던 기억이 있다. 조수미가 부른 한국어 가사는 작가 신경숙이 번안했다고 한다. 여기서 모티프를 얻어 ‘기차는 7시에 떠나네’라는 장편소설을 쓰기도 했는데 내 개인적인 사견으로 정말 재미없는 소설이다.

 

 이쯤 되면 애인을 두고 카테리니로 떠난 남자가 어떤 일로 떠났는지를 알 수 있겠다. 미키스 데오도라키스 자신이 나치 저항 레지스탕스의 전력이 있거니와 작자도 레지스탕스를 위해 만든 노래라고 한다. 그것 아니어도 조국의 민주화를 위한 투사라고 해도 틀리진 않을 것이다.

 마리아 칼라스 이후 그리스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가수라는 아그네스 발차가 이 노래를 불렀다. 메조소프라노 특유의 애조에다 그리스 민속악기 부주키의 애잔함이 더욱 슬픔의 심연에 빠져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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